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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릉(裕陵) - 조선 제27대 순종과 원후 순명황후, 계후 순정황후의 능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6. 12. 14. 04:27
유릉(裕陵) - 조선 제27대 순종과 원후 순명황후, 계후 순정황후의 능
황제릉으로 조성된 홍릉은 기존 조선왕릉과 석물의 위치와 종류, 숫자가 다르며 정자각 대신 일자각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비각(碑閣)
무덤 주인공의 표석(表石)을 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 비각이다.표석은 보통 1.5m 높이의 장방형 돌에 주인공의 호칭을 새기고 간략한 이력을 적는데
하부에 받침돌이 있고 위에도 화강석으로 기와지붕 형태를 다듬어 올려놓는다.
비각은 보통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의 간소한 규모이다.벽의 하부는 전돌로 채워서 내구성을 높이지만 상부는 나무로 창살만을 내서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한다.
지붕은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다.
비문(碑文)은 순종효황제유릉(純宗孝皇帝裕陵)
순명효황후부좌(純明孝皇后祔左)
순정효황후부우(純貞孝皇后祔右)
유릉 제향일 : 매년 4월 25일(양력)
수복방(守僕房)
능을 관리하는 관원들의 거처로 사용하였으며, 제례에 쓰일 제물을 검사하는 곳이다.홍살문(紅箭門)
홍살문은 능역의 가장 아래쪽 향로·어로가 시작되는 곳에 신성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문이다.
기둥을 양쪽에 세우고 위에 심방과 띠장을 가로지르고 가는 살을 약 15~24cm 간격으로 박고
중앙에는 삼지창과 태극문 등을 새긴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지붕은 달지 않는다.
어정(御井)
유릉은 어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유릉 능역 내에는 두 기의 어정(우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그중 금천 주변의 어정은 둘레석만 남아 있다.
조선왕릉 주요 상설, 명칭
1) 곡장(曲墻) 봉분을 보호하기위하여 삼면에 둘러 놓은 담장
2) 능침(능침) 왕이나 왕비의 봉분, 능상이라고도 하며 병풍석, 난간석 등으로 구성.
3) 석양(石羊) 4)석호(石虎)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온순함을 상징하는 양과 사나움을 나타내는 호랑이를 무덤 양쪽에 두 기씩 번갈아 설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악귀들의 접근을 막는 수호신
5)혼유석(魂遊石) 상석에 해당하며, 영혼이 나와 놀다가는 곳
6)망주석(望柱石) 혼이 봉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표지석.
7)장명등(長明燈)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등.8)문인석(文人石)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두 손으로 홀(笏)을 쥐고있다
9)석마(石馬) 문인석이나 무인석의 뒤나 옆에는 말이 서 있다. 중국 왕릉에는 없는 조선 왕릉 고유의 형식.
10)무인석(武人石) 문인석 아래에서 왕을 호위하고있으며, 두손으로 장검을 짚고 위엄 있는 자세로 서있다
11)산신석(山神石) 시신을 모신 후에 3년 동안 토지를 관장하는 신인 후토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주로 정자각의 오른쪽 위, 예감과 마주 보는 곳에 설치.
12)예감(瘞坎) 제사를 지낸 후에 축문을 태우는 돌함으로 ‘망료위’라고도 함. 정자각 뒤 왼쪽에 있다
13)비각(碑閣) 왕의 생전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나 신도비를 안치한곳
14)정자각(丁字閣)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丁(정)’ 자 모양의 집이어서 정자각이라 하고,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이곳에 오르내릴 때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 동쪽 계단으로 오르고 서쪽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 황제는 일(日)자, 왕은 정(丁)자 모양이라한다.
15)참도(參道)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돌길로 왼쪽은 높게, 오른쪽은 낮게 만들어져 있다.높은 쪽은 혼이 다니는 길로 ‘신도(神道)’, 낮은 곳은 임금이 다니는 길로 ‘어도(御道)’라 한다.
16)수복방(守僕房) 능을 관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
17)수라간(水刺間) 제사 음식을 만들고 제기에 나누어 담는 주방.
18)배위(拜位) 왕이나 제관이 무덤을 참배하러 오면 이곳에서 먼저무덤을 향해 절을 올리면서 ‘참배하러 왔음’을 무덤의 주인공에게 알림.
홍살문 옆에 3.3㎡ 정도로 돌을 깔아 놓고, 이곳에서 4배를 하며 제향을 올리러 온 것을 알림.
19)홍살문(紅箭門) 신성 구역을 표시하는 문으로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 살을 박아 놓음.홍문, 홍전문으로도 불림
20)금천교(禁川橋)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21)재실(齋室) 능 제사 준비를 하고,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상주하는 곳22)병풍석(屛風石) 능의 주위를 병풍처럼 빙 둘러서 무덤을 보호하고 12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이 해당 방위에 맞게 새겨져 있어 잡귀들이 무덤 안에 들어올 수 없게 함.
‘둘레돌’, ‘호석’이라고도 한다.
유릉(裕陵) - 조선 제27대 순종과 원후 순명황후, 계후 순정황후의 능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년에 즉위 하였다.1926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으며, 순종 국장일에 맞추어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황후(純明皇后, 1872~1904)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로 1897년에 황태자비가 되었으나순종이 즉위하기 전에 승하하여 지금의 능동 어린이 대공원에 모셨다가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천장(遷葬)하여 함께 모셨다.
순정황후(純貞皇后, 1894~1966)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로 순종의 계후가 되었다.순정황후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었고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슬픔을 달래다가
1966년 73세로 승하했으며 순종과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유릉(裕陵)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황제(純宗皇帝, 1874~1926. 재위 1907~1910)와원후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 1872~1904), 계후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 1894~1966)의 합장릉이다.
순종은 연호를 융희(隆熙)로 하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했으나1910년에 국권을 일제에 강탈당하여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었다.
1926년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고, 장례일을 계기로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황후는 민태호(閔台鎬)의 딸로 1907년에 황후로 추존되었고,1926년에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천장(遷葬)하여 합장(合葬)하였다.
순정황후는 윤택영(尹澤榮)의 딸로, 1907년에 황태자비가 되었고, 순종 즉위 후 황후가 되었다.유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되어 있는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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