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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성(性) 민속공원, 삼척 해신당공원(三陟 海神堂公園)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6. 12. 31. 05:13

    세계적인 성(性) 민속공원, 삼척 해신당공원(三陟 海神堂公園)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 공원에는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명 해낭당(海娘堂)이라고 불리우는 해성황당(海城隍堂)은 신남리 바다로 향한 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과 10월 축일에 이곳 어민들이 남몰래 나무로 남근(男根)을 깎아

    금줄에 걸어 놓고 풍어와 해난사고 없게 해 달라는 치성을 들인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마을의 한 처녀가 미역을 따며 살았다.

    미역철이 되어 처녀도 미역을 따러 가게 되었는데 마침 건장하고 잘 생긴 젊은 사공이 처녀를 배에 싣고

    미역이 많은 바위에 실어다 준 후 한낮에 다시 태워다 주겠다고 약속한 후 돌아갔다.

    처녀는 열심히 미역을 땄으나 다시 실어다 준다던 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치다 결국 밤을 못 넘기고 심한 파도에 휩싸여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처녀가 죽고 난 후부터 이 마을에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는 변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 처녀의 원혼이 배회하는 것이라고 믿고 산 언덕 서낭당으로 모셨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도 바다에 나간 장정들은 풍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 원혼이 젊은 사공들을 잡아간다고 확신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 쏟아 치성을 올렸지만 고기도 잡히지 않고 해난사고만 계속 일어났다.

    화가 치민 어떤 청년은 술에 취한 김에 이 서낭당에 가만히 들어가서 제당을 부수고 소변을 갈겼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고기도 잘 잡히고 해난사고도 없어졌다.

    마을사람들은 죽은 처녀가 남자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이후부터

    남근을 깎아 모셔 걸어 놓고 치성을 드리게 됐다고 전한다.

    그 처녀가 해초를 따다 죽은 바위는 약 1km 떨어진 해중에 있는데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살려고 애쓰다 죽은 바위라 하여 "애바위"라 한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852-6 (갈남리)





     

    해신당 전설과 함께한 수령 500여 년의 향나무(보호수).





     

    신남마을의 해신당(海神堂)






     

    작품명: 힘 (권오중 외, 2006제작)

    웅장한 이미지

     















     

    해신당공원에서 본 신남항(薪南港)






     

    폭풍의 언덕













     

    전통어가 애랑이네 집









     

    바다품기 전망대

    해신당공원 주변 해안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바다품기 전망대, 일출조망의 명소이다.

     






     

    남근석을 조형물로 조성한 십이지신상





     

    애랑(처녀)상

     










    남근숭배 문화의 삼척

     해신당의 전설

    옛날 이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애랑이와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간다 하기에

    총각 덕배가 떼배로 애랑이를 바위섬에 데려다주고 덕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불어 해변으로 나와보니 이미 배를 뛰울수가 없을 만큼

    강한 바람과 함께 집채같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처녀 애랑은 살려달라고 덕배를 부르며 애원하다가 안타깝게도 파도에 쓸려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이 바다에서는 고기가 전혀 잡히질 않았으며,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지금까지의 재앙 모두가 바위를 붙잡고 애쓰다죽은 애랑이의 원혼이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애랑이가 죽은 동쪽 바위섬을 향해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고사를 지냈으나

    고기는 여전히 잡히지를 않고 갈수록 마을과 어부들의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 가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한 어부가 술에 취해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대한 화풀이로

    바다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다른배들은 여전히 빈배인데 그 어부만 만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민들은 그 어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어부가 지난 저녁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갔고 기대한대로 모두들 만선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이 마을에서는 그동안의 재앙이 처녀 애랑이의 원한 때문이라 확실히 믿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 끝 자락에

    애랑신을 모시고 남근을 깍아 제물과 함께 바쳐서 혼인을 못한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월보름과 시월의 오()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정월보름에 지내는 제사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고, 시월오()일에 지내는 제사는 동물(12지신)중에서

    말의 남근이 가장 크기 때문이며 말()의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1km앞의 저 바다에는 애랑이가 덕배를 애타게 부르다 죽었다는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마을사람들은 "애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애랑이는 애바위에서 덕배는 어촌민속관 앞 뜰에서 동상으로 승화되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해신당 전설(海神堂 傳說)


    옛날 신남마을에 혼일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총각은 처녀를 자기 배에 태워 바위섬에 실어다 주고 돌아와

    밭일을 하고 처녀는 남아서 해초를 열심히 뜯었다.
    어느덧 해가 중천을 넘어서자 높은 파도가 갑자기 일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 수록

    풍랑이 심해지기만 하여 총각은 아무리 애를 써도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처녀는 밤새 총각을 애타게 기다리며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헛되이 죽고 말았다.
    처녀가 살려고 애쓰다 죽었다고 하여 그 바위섬의 이름은 애바위가 되었으며
    사고 후 마을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고 바다에서는 사고만 계속 발생하였다
    이에 짜증이 난 한 어부가 술이 취해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로 소변을 보았는데 다음날 바다로 나가 만선이 되어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혼을 위로하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 끝자락에서 남근을 깎아 매달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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