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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7. 2. 6. 04:56
천안삼거리공원
천안삼거리(天安三巨里)
조선시대부터 한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삼거리 대로였다.
북쪽으로는 평택과 수원을 거쳐 한양에 이르는 길이고 남쪽으로는 청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으면 안동과 영주로 연결되었고
보은을 지나 상주시, 김천시, 대구광역시, 경주시로 이어졌다.
서쪽으로는 논산시를 거쳐 전라도 땅인 전주시, 광주광역시, 목포시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현재 천안삼거리에는 작은 기념석이 세워져 예전의 삼거리를 표시하고 있다.또한 천안삼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천안시는 당시 북한군과 미군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고 있다.
1950년 7월 8일 이곳에서 전사한 미군 대령의 부르고 이름을 따 '마틴공원'으로도 있다.
천안상징조형탑
교통의 요지이자 충절의 고장 천안이 갖는 지형적 위치와 미래지향적인 천안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형상화 하였다.역동적이고 상승감이 있는 조형의 형태는 우리나라 중심 도시인 천안의 이미지와 함께 끊임없이 성장 발전하는 천안의 미래를 상징한다.
중단부의 삼각 형태는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를 상징하고, 상단부의 원구는 지구를 상징하며,
하늘 천(天)자와 땅의 형태를 조형적으로 표현하여 하늘아래 편안한 땅,
즉 자연과 인간을 함께 아우르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천안의 활기찬 모습을 상징화하여 나타냈다.
천안능수버들
천안 삼거리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큰 길이 두 길로 나누어진다.
한 길은 병천을 지나 청주, 문경새재, 대구, 동래에 이르는 길이고, 또 하나의 길은 공주를 거쳐 논산, 강경, 전주, 순천에 이르는 길이다.
천안 삼거리는 지금의 국도 1호선과 21호선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바로 위쪽이며, 이곳에 천안 삼거리 표석이 있다.
천안 삼거리는 예전에 길손을 재워 주는 원(院)과 주막이 즐비하고 사방에서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났는데,
「천안 능수버들」은 천안 삼거리에 능수버들을 심은 유래를 전하는 전설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전기 경상도 안동 땅에 안동 김씨 형제 일가가 살았다.형제는 각기 성년을 앞둔 아들을 한 명씩 두고 있었다. 형의 아들은 갑동이고, 동생의 아들은 을동이었다.
장가갈 나이가 되었으나 갑동은 글 읽기만을 좋아하고 혼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갑동보다 한두 살 아래인 을동에게는 여기저기서 청혼이 들어왔다.
을동의 아버지는 아들의 혼처를 살피다가 천안의 이 진사 딸에게 장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그래서 과거 보러 떠나는 갑동과 아들 을동을 데리고 올라와 천안 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뜬 갑동은 을동이 편지 한 장만을 남겨 둔 채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 진사 딸에게 형인 갑동이 장가를 들라는 것이었다. 을동 자신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편지를 본 을동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안동으로 내려가고 말았다.한참을 고민하던 갑동은 을동의 말대로 자신이 가서 장가를 들기로 하였다.
마침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다는 전라 감사의 아들을 만난 갑동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장가드는 데 후행(後行)을 서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라감사의 아들은 흔쾌히 갑동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 진사 집에서 을동인 체하며 혼례를 올린 갑동은 전라 감사의 아들을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하게 한 뒤 신방으로 밀어 넣고 주막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눈을 뜬 전라감사의 아들은 깜짝 놀랐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진사의 딸과는 혼약을 한 사람 따로, 혼례를 치른 사람 따로, 첫날밤을 보낸 사람이 각각 따로였다.
뒤늦게 아들이 뜻밖의 장가를 간 사실을 안 전라 감사는 천생연분이라며 좋아하였고, 오히려 갑동을 자신의 사위로 맞아들였다.과거를 보러 간 을동은 장원 급제를 하고 시험관이던 어느 대감의 사위가 되었다.
그 뒤 갑동과 전라 감사의 아들도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벼슬길에 올랐다.
기이한 인연이라며 서로 연락을 끊지 않았던 세 사람은 날을 정해 모두 천안 삼거리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또 세 사람의 인연을 기념으로 천안 삼거리에 버드나무를 한 그루씩 심기로 뜻을 모았다.
갑동은 경상도로 가는 길에 심었고, 전라 감사의 아들은 전라도로 가는 길목에, 을동은 한양으로 가는 길옆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천안 삼거리의 상징인 능수버들이 되었다고 한다.
오룡쟁주상(五龍爭珠像)
천안의 지세(地勢)가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싸우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오룡쟁주(五龍爭珠)'라 한다.흥타령 비(興打令 碑)
주무대광장으로 가는 길에 춤을 추고 있는 듯한 형상의 비석들이 흥타령 碑이다.여기 흥타령 碑는 천안의 상징인 '오룡(五龍)'의 힘찬 기상과 능수버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용이 승천할 때 솟구치는 물의 파장을 기단(基壇)에 조각(彫刻)하였으며,
천(天)·지(地)·인(人) 그리고 천안삼거리를 세개로 조형하였다.
흥타령(興打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축 늘어졌구나 흥~
에루화 좋다 흥~
성화가 났구나 흥~※ 흥타령
천안삼거리라고도 한다. 신조(新調)와 구조(舊調)가 있으며
한말에 평양감사 조성하(趙成夏)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원망한 데서 비롯된 노래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갑오개혁 이후 명창 보패(寶貝)가 불러 유명해졌으며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 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으로
시작되는 사설(辭說) 사이사이에 '흥 흥'하는 조흥(助興)이 끼었기 때문에 흥타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부른다.천안삼거리(天安三巨里)
천안삼거리 '흥타령 민요'의 고장
'천안(天安), 지안(地安), 인자안(人自安)'이라 일컬어
하늘 아래 가장 평안한 곳그 순후한 인정이 넘치던 삼남의 길목
한 그루의 능수버들 박현수 선비와
능소아가씨의 애련한 속삭임이
길손의 걸음을 즐겁게 한다.천년 그 묵은 향기 속에 희망찬
내일을 여는 천안인이 그 웅비의
나래를 편다.御使 朴公永民 愛恤淸德 勸學碑(어사 박공영민애휼청덕권학비)
乙亥 二月(을해 2월)충청 암행어사 박영민의 선정비는 봉명동 20번지 차돌고개 아래에 있었는데,
1981년 신유 10월에 온양선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이곳 삼거리공원으로 옮겨 본존하고 있다.
천안삼거리공원
천안삼거리공원은 민요 흥타령(興打令)으로 유명한 천안 삼거리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천안삼거리는 옛날 우리나라 삼남대로(三南大路)의 분기점이다.이 길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대로로 천안에 이르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병천을 거쳐 청주로 들어가 문경새재를 넘어 상주로 통해
영동, 김천을 지나 대구, 감영, 경주, 동래로 통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공주를 거쳐 논산, 전주, 광주, 순천, 여수, 목포등지로 통하는 대로다.
호사스러운 관행이 지나가기도 하고 초라한 선비가 아픈 다리를 쉬어 가기도 하던 곳으로
천안삼거리는 갖가지 전설과 민요를 낳기도 하였다.
천안삼거리 흥타령은 기쁜 노래의 대명사인양 많은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즐겁게 해주고 있다.이 유서 깊은 천안삼거리를 관광지로 조성코자 가로수로 능수버들을 심어 가꾸고 있으며
호수가에 화축관(華祝館)의 문루(門樓)이던 영남루(嶺南樓)를 옮겨 수중에 세웠다.
또한 천안의 풍수지리를 상징하는 오룡쟁주상(五龍爭珠像)이 있으며, 연못가에는 흥타령비가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해마다 흥타령 축제등 많은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410 (삼룡동)'국내 나들이 > 공원(公園)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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