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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 영화당(昌德宮 暎花堂)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3. 23. 05:30

    창덕궁 영화당(昌德宮 暎花堂)

     

     

     

     

     

     

     

     

     

     

     

     

    창덕궁 영화당(昌德宮 暎花堂)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芙蓉池) 옆에 있는 영화당이 처음 창건된 것은 광해군 대의 일이지만

    지금의 건물은 숙종 18(1692) 때 옛 터전에 재건한 집이다.

    영화당 동쪽의 넓은 앞뜰은 춘당대의 일부로서 정조 이래로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과거를 보이던 과거장이기도 했다.

    영화당은 정면5(34.05), 측면 3(20.05)에 단층 팔작 기와지붕의 이익공 집으로,

    높직한 장대석 기단위에 툇간 3면이 모두 트인 정자 형태로 지어져있다.

    정면은 사람이 거처하는 방 한칸만이 온돌방이고, 대청2간과 3면의 툇간은 마루이다.

    왼쪽 툇간에는 아궁이를 낸 골방을 꾸며 놓았다.

    필요에 따라서 대청 3면의 문짝을 터서 달아 올리면 3면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한편 공포는 이익공을 기둥윗몸에 창방을 짜돌렸고, 창방 높이에 맞추어 기둥머리 밑으로

    제공 첨차 하나를 짜서 뒷몸이 안쪽으로 쭉 빠지게 하므로써 퇴량을 받는 양봉이 되게 하였다.

    사각 기둥머리에는 퇴방과 도리 받침 장혀를 짜 넣었으며 퇴량 위로 기둥도리가 놓이게 하였다.

    퇴량을 고주몸에 끼에 하여 대들보 보다 한층 낮은 곳에서 이음하였다.

    대들보 머리 아래에는 기둥머리와같이 짠 초공이 기둥을 받고 있으며, 중도리 아래에 소로를 받는

    행공첨차를 짜 넣었지만 그 행공첨차는 기둥 몸에 끼게 되어 있다.

    처마와 툇간에는 우물천장을 돌렸고, 대청 앞에는 계자 난간을 돌렸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의 각마루는 양성하지 않았으나 그 끝에 취두, 용두, 잡상을 장식하여 놓았다.

    단청은 은근한 빛깔의 모루단청을 하였다.

    대체로 영화당은 특별한 꾸밈이 없는 소박하고 견실한 건물 이면서

    주변의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정조 때부터 이곳 영화당 동쪽 넓은 마당에 과거장을 마련하고,

    영화당에 임금이 친히 참석하여 전시(殿詩)를 보여 인재를 뽑았다고 한다.

    <한경지략>에 의하면, 문과, 무과의 과거시험이나 또는 군대를 열병할 때면

    배설방이라는 곳에서 언제나 영화당 처마 앞에 긴대나무 장대 7개를  버팀목으로 세우고 큰 차일을 치는데,

    차일이이 어찌나 크고 넓었던지 그 옆에 서 있는 나무까지 차일 밑으로 덮일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당 섬돌에 잇대어 붉은 널판을 걸쳐 놓은 용수석은 그 위에 300여명이나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또 아래로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높아서 위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홉층이나 되었다 한다.

    궁궐지에 의하면 영화당 현판은 정조의 어필이었다고 한다.

    또한 선조, 효종, 현종, 숙종의 어필들이 모두 이곳 영화당에 편액으로 걸려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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