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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돌목 (명량해협, 鳴梁海峽)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7. 4. 2. 18:49

    울돌목(명량해협, 鳴梁海峽)

     

    울돌목 또는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있는 해협이다.

    길이 약 1.5km이며,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

    밀물 때에는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빠져 나가 조류가 매우 빠르다.

    이를 이용하여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빠른 물살을 이용해

    12척으로 10배 이상의 적함 130여 척을 크게 격파하여 조선군이 대승을 거둔 곳이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유속은 약 10노트(10knot,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1984년 완공된 명량을 가로지르는 길이 484m, 너비 11.7m의 진도대교가 건설되었다.

     

     

     

    진도대교(珍島大橋)

     

    진도대교는 길이 484m, 너비 11.7m인 한국 최초의 사장교이다

    진도에 가려면 진도대교를 지나야하기 때문에 진도의 상징이 된 다리이기도 하다

    명량해협에 위치하고 있는데 울돌목 해협은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 빠른 물살을 이용해 임진왜란 때 크게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전투에 임하기 전 이순신 장군은 바닥까지 떨어진 수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울돌목(鳴梁, 명량) 회오리

     

    울돌목 해협(鳴梁 海峽)은 암초에 물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울돌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울돌목 해협은 폭은 294m 내외이며, 가장 깊은 수심은 20m.

    물길은 동양 최대 유속인 11노트(시속 20.3km, 관측된 최고유속 13노트/시속 24km)에 달한다.

    하루 네 차례 들고 나는 빠른 물살은 좁은 해협과 깊은 해구의 절벽에 부딪히며 거품이 일고 물이 용솟음쳐 회오리친다

    또한 회오리치는 소리가 20(7.8km)밖에서도 들린고 물길은 한 길(한 길은 8자 또는 10자로 약 2.4m~ 3m에 해당)에 이르며

    바다가 운다고 하여 명량(鳴梁)이라 불린다

     

     

     

     

    진도 울돌목 판옥선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또 하나의 요소는 판옥선(板屋船)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진도 울돌목 판옥선이 나온다

    당시 판옥선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모습이다.

     판옥선은 배의 상갑판에 판옥이 설치되어 있어 판옥선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상유십이(常有十二)

     

     

     

     

     

     

     

     

     

     

     

    명량해전(鳴梁海戰)

     

    명량해전(鳴梁海戰) 또는 명량대첩(鳴梁大捷)1597(선조 30) 음력 916(1025) 정유재란 때

    일본수군이 133척의 배를 이끌고 조선에 침입할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鳴梁)의 거센 조류를 이용하여 격퇴한 전투.

    당시 조선의 전력은 12척의 배와 군사 120명에 불과했으나, 일자형 진형을 이루며 적에 대항했고,

    일본군 장수 구루시마의 목을 베어 사기를 꺾으면서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다.

    이 전쟁은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승리를 이끈 해전이며,

    정유재란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십이 척이 있사옵니다."


    칠천량해전 이후 공께서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라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에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한 내용이다.

    원문은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이다.

    이는 수군의 존속과 가치와 그 효용론을 강력히 주장한 공의 뛰어난 전략적 식견의 발언이라 하겠다.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낸 말씀이다.

    원문은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군법으로 처단할 것이다."이다.

     

     

     

     

    명량(鳴梁)

     

     

     

    통일기원국조단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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