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017 수원시 연등축제 봉축 점등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7. 4. 9. 21:31

    2017 수원시 연등축제 봉축 점등

     

    부처님 오신날(53)을 한 달을 앞둔 201744일 오후 7시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수원 연등축제 '봉축 점등식'이 열려 찬불가와 법고로 축하공연을 했다

    이날 부처님 오신날 축하 점등식은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국보 제20)과 석가탑(국보 제21)

    한지 공예 작품으로 만들어 내빈들이 함께 점등식을 가졌다

    참가한 내빈은  염태영 수원시장국회의원(김진표, 박광온, 김영진), 수원시의회 의장세영스님(수원시불교연합회장),

    수산스님(대승원 주지, 수원시연등보존위원회 위원장)   불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타이틀로 수원연등축제 봉축점등식을 열고

    앞으로 22 봉축법요식과 연등행렬 등으로 수원연등축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석가탑(釋迦塔)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釋迦塔)’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각 10.75m, 10.29m로 비슷하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751) 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국보 제1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제126)’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73)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다보탑(多寶塔)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제21)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재의 부처인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 8,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만이 남아있다.

     

    석가탑 등은 한지 위에 채색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등 제작기법에 따라 실물의 150% 크기로 제작하였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