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복궁 사정전(景福宮 思政殿)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6. 26. 05:30

    복궁 사정전(景福宮 思政殿)

     

    사정전은 왕이 평상시 거처하며 정사(政事)를 보살피던 곳이다.

    경복궁 근정전 뒤 사정문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만춘전(萬春殿), 서쪽에 천추전(千秋殿)이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태조 4)년에 지었으며, 1553(명종 8)년에 불탄 뒤 재건했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1867(고종 4)년에 중건하였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조판서로 있던 조석우(曺錫雨, 1810~?)가 썼다.
    사정(思政)’선정(善政)을 생각하다라는 뜻이며, 정도전이 작명하였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정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정도전이 임금에게 올린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대개 임금은 한 몸으로써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지만,

    수많은 백성들은 슬기롭고 어리석고 현명하고 불초(不肖)한 자들이 섞여 있고,

    번거로운 수많은 일들은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로운 것들이 섞여 있어서,

    임금이 된 이가 만일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구별하여 처리하겠으며,

    사람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알아서 등용하거나 퇴출할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임금이 된 이라면 누가 높고 영광되고자 하고 위태로움을 싫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옳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 해서 계책이 옳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를 당하고 패망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니,

     진실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랴마는 집이 멀 뿐이로다.’ 하였는데, 공자(孔子)생각함이 없는 것이다.

    왜 멀겠는가?’ 하였고, 서경에 말하기를,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그 쓰임이 지극한 것입니다.

    이 전(殿)에서 매일 아침 정사를 보시고 온갖 기틀을 거듭 모아서 전하께 모두 품달하면,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하시는 데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신은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 짓기를 청합니다.”

     

     

     

    사정문(思政門)

     

    사정전을 출입하는 남쪽 문으로 1867(고종 4)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

    사정문은 3칸으로 되어 있다.

    문의 가운데 칸은 왕이 드나들 때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은 좌우의 문을 이용하였다.

     

     

     

     

     

     

     

     

     

     

     

     

    만춘전(萬春殿)

     

    사정전 동쪽에 있는 건물로, 창건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37(세종 19)년의 실록 기사에 이 건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무렵에는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67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새로 만들었으며, 6.25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뒤에 복원했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시 좌승지이던 송희정(宋熙正, 1824~?)이 썼다.

    그는 이 후 신미양요(1871)가 일어났을 때 의주부사로 사건의 수습을 맡기도 했다.

    만춘(萬春)’만년의 봄이다. ‘()’은 오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은 오행에서 동쪽을 가리킨다.

    오랜 시간 국가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천추전과 상대하여 이름을 지었다.

     

     

     

     

    천추전(千秋殿)


    사정전의 서쪽에 있는 건물로, 조선 전기에 이 건물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1867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만들었다.

    사정전의 기능을 보완하는 천추전과 만춘전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정전에 온돌이 없으므로 겨울에는 이곳에서 정사를 보고 경연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시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있던 정범조(鄭範朝,1833~1898)가 썼다.

    갑오개혁 이후 새로이 설치된 관직들을 두루 맡았으며 훗날 좌의정, 우의정을 여러 차례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천추(千秋)’천 년의 가을이란 뜻이다.

    ()’은 오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는 오행 상 서쪽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국가 기틀이 오랜 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정전 동쪽에 있는 만춘전과 상대하여 이름을 지었다.

     

     

     

     

     

    용신당(用申堂)

     

    사정전 서쪽에 있는 행각으로 이다.

    1868(고종 5)년에 만들었다. 용신(用申)’써서 펼친다는 뜻이다.

    경서 가운데에서는 그 전거를 특별히 찾을 수 없다.

    사정전의 성격으로 보아, 재능 있고 어진 신하들의 힘을 활용하여 선정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서는 아니나 용신의 용례는 명나라의 학자 가상천(柯尙遷)이 찬술한 주례전경석원(周禮全經釋原)에서 찾을 수 있다.

    가상천은 주례여섯 칭호를 구별하여 첫째를 신호(神號), 둘째를 귀호(鬼號), 셋째를 기호(示號),

    넷째를 생호(牲號), 다섯째를 자호(齍號), 여섯째를 폐호(幣號)로 한다.”란 구절에 대해,

     “() 는 평상시의 이름을 바꾸어 다시 아름다운 칭호로 만드는 것이니,

    그것을 사용하여[] 존경하는 성의를 펼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천자문의 글자를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 창고


    천자고(天字庫지자고(地字庫현자고(玄字庫황자고(黃字庫우자고(宇字庫

    주자고(宙字庫홍자고(洪字庫황자고(荒字庫일자고(日字庫월자고(月字庫)

     

    사정전의 남쪽 행각에 사정문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 현판이다.

    서쪽부터 천자문(千字文)의 글자 순서를 따라 천자고(天字庫지자고(地字庫현자고(玄字庫

    황자고(黃字庫우자고(宇字庫주자고(宙字庫홍자고(洪字庫황자고(荒字庫

    일자고(日字庫월자고(月字庫)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활자를 보관하던 자고(字庫)였다고 하기도 하고

    임금에게 사용되던 왕실그릇 및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활자고였다고 하는 설은 현판 글자를 잘못 해석해서 그렇게 본 것이며,

    활자를 보관하는 창고라고 보기에는 정황이 맞지 않는다.

    옛날에는 흔히 순서를 매길 때 천자문 순으로 하였으므로

    이것도 궁중 창고를 단순히 천자문 순서대로 이름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창고의 모습은 없어지고 현판만 붙어 있다.

     

     

     

     

     

     

     

     

     

     

     

     

    사정전 일원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1867년 중창된 사정전은 공식 업부공간으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과 천추전은 비공식 업무시설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 천지현황(天地玄黃) 등 천저문 순서로 이름을 붙인 창고가 있어 왕실의 요긴한 물품들을 저장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