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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청순례지본당, 천주교 종로성당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7. 7. 19. 05:30

    포도청순례지본당, 천주교 종로성당

     

    서울의 중심가이며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에 의한 상거래의 중심인 종로는 명동관할구역이었다.

    이러한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지역 사목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당시 서울대교구장인 원형근 리비오 아드리아노 주교(파리외방선교회)1944612일 일제 말엽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현재의 본당 부지인 종로구 인의동 169번지 77평을 사들였다.

    그러나 곧바로 성당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으며,

    1951년 당시 명동성당 주임인 장금구 신부가 이를 공소로 꾸며 방문미사를 봉헌하였다.

    정기적인 이 미사는 6.25사변으로 상처 받은 어려운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해 주고 힘과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1955410일 서울교구청은 종로지역에 본당 신설을 발표하고

    초대 본당 주임으로 명동성당 보좌인 이계중(요한) 신부를 임명 하였다.

    종로성당은 서울대교구 19번째 성당으로 처음에는 종로4가성당으로 불리어 졌으나,

    이계중 신부가 두 번째 성전을 신축하면서 종로성당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성전은 1987년 장대익(루도비꼬) 신부에 의해 완공된 세 번째 성전이다.

    2013'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 승인 되었다.

    종로성당 주보성인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 프랑스)이다,

     

     

     

    포도청순례지성당

     

    조선시대의 좌포도청(종로3가 옛 단성사 앞), 우포도청(광화문 네거리 옛 동아일보 사옥앞)

    서울의 중요한 순교터일 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신앙 증거터이다.
    좌포도청 순례지를 사목 관할구역 안에 두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종로 본당은 20132,

    주임신부 홍근표(바오로) 신부의 건의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대주교님으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되어,

    포도청 순교 성인들을 본당 수호성인으로 모시도록 승인 받았다.

    이에 2013년 순교자 성월,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을 본당 내에 마련하여

    포도청(옥터) 순교자들의 신앙을 소개하고 지속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포도청(옥터) 순례지를 잇는 순례길을 안내함으로써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힘쓰고 있다.

    특히 201392일 선포되는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에 포도청터가 포함되면서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 중 하나이면서 역사에 묻혀 있던 포도청터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포도청 순교지는 103위 성인 중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허임 바오로 등 스물한 분,

    현재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중 윤유일 바오로 등 오위가 장살, 옥사, 교수 등으로 순교한 곳이다.

    성전 지하의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에는 옛 포도청 사진과 옥의 구조도, 박해 연표,

    박해시대 형벌도구, 포도청 증거자 증언자료, 성 김대건 신부의 포도청 옥중 서한 등을 전시하고 있다.

     

     

     

     

     

    포도청 순교자 부조(수난과 영광)

     

    성당 외벽에 설치된 22명의 포도청 순교성인과 무명 순교자 및 미래의 한국교회 성인까지 형상화한

    김일영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의 청동 부조 수난과 영광’(가로 10m, 세로 1.5m)을 성전 외벽에 제작하여 부착하였다.

    순교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는 일이며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이다.

     

     

     

     

    천주교(天主敎)와 포도청(捕盜廳)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여 처벌하는 임무는 서울을 포도청을 비롯하여

    지방의 진영(鎭營)이나 수영(水營) · 병영(兵營) 등에서 담당하였다.

    이 중 포도청은 관할 구역인 서울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신자들을 체포하여 압송하였다.

    포도청 소속의 포졸들이 다른 지역에서 신자들을 체포해 올 때는 우선 해당 지역 수령에게 보고하여 허락을 받은 뒤,

    그 고을을 포졸들과 함께 신자들을 체포하였다.

    또한 지방의 진영이나 수영 및 병영에서 신문을 받은 신자들 가운데

    상급 기관의 조사가 더 필요한 사람들도 서울의 좌 · 우 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이와 같이 포도청에서 직접 체포한 신자들과 지방에서 이송된 신자들은 좌 · 우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은 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상급 기관인 형조나 의금부로 이송되어 다시 신문을 받고서 확정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신자들의 처형은 좌 · 우 포도청의 옥에서도 이루어졌는데,

    교수형이나 백지사형(白紙死刑)에 의한 처형은 주로 포도청의 옥에서 이루어졌다.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수록되어 있는 순교자 일람표에 따르면,

    · 우 포도청의 옥에서 교수형이나 백지사형을 받아 순교한 신자들의 수가

    형장에서 참수형이나 효수형을 받아 순교한 신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좌 · 우 포도청에서 신자들을 심문할 때 형조보다도 매질을 더 심하게 하였기 때문에,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고문으로 순교한 신자들도 많았다.

    이렇게 볼 때 좌 · 우 포도청 자리는 박해시기에 가장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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