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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自由公園)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7. 8. 4. 05:00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自由公園)

     

    응봉산(鷹峰山) 남쪽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사람들이 설정한 각국 조계(各國 租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점차 '여러 나라 '라는 뜻의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통칭되었다.

    1888년 러시아 측량 기사 사바틴(Sabatin)이 설계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식공원으로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보다 9년이 앞선다.

    이 공원에는 한국 최초의 양관(洋館)으로 알려진 독일 세창양행(E Meyer & Co.)의 숙사(宿舍)

    개항 초기 인천해관장(仁川海關長)을 역임했던 영국인 존스톤(Johnston)의 별장,

    당시 각국인들이 사교장이 되었던 제물포구락부(濟物浦俱樂部) 등 근대 건축물이 있어 유명하다.

    1914년 각국조계가 폐지되면서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그곳을 동공원(東公園), 만국공원은 서공원(西公園)으로 불렀다.

    광복 후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렀다가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개천절에

    이곳에 맥아더 동상 제막식을 가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맥아더장군 동상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1880년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한

    이민자 출신 군인 가문의 맥아더 2(Arthur MacArthur Jr.)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비역 중장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되어,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고, 무려 4년동안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장교의 길을 걷게 된다.

    19506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불법 남침을 하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626일 북한의 김일성은 이 전쟁을 가리켜 남한을 해방시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조국통일 성취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남한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이 당시 정치가 너무 불안했던 남한은 무방비상태에 있었던 때라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627일 서울을 점령하게 되었고, 73일 한강을 넘어 남진을 계속하게 된다.

    북한 위력은 대단해 부산만 남겨둔 상태에서 만약 북한이 부산까지 점령을 하게 된다면

    남한의 패로 끝나게 되는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유엔군이 부산을 거점으로 낙동강 방어에 성공을 하며 위기를 기적으로 이끌게 된다.

    한편, 맥아더는 이 상황을 보고,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의 중심부를 타격하여 식량보급로를 끊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곳이 바로 인천에 위치한 월미도이다. 월미도 주변은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때문에 미국측에서는 완강히 거부를 하였다.

    하지만 맥아더는 포기하지 않고, 상대의 허점을 찌를 수 있다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끝까지 인천상륙을 주장하게 되고,

    828일 미합참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어내게 된다.

    그는 1단계 작전으로 월미도 점령 성공, 2단계로 인천반도 공격을 성공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공을 크게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을 건립하게 되었다.

     

     

     

    인천시민헌장비(仁川市民憲章碑)

     

     

     

     

     

     

     

     

     

    닷 조형물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 조형물

     

     

     

     

     

     

     

     

     

     

     

     

    제물포고등학교(濟物浦高等學校)

     

    193541일 인천부립 인천중학교로 개교하여 인천중하교로 재개교 하였다가

    1954813일 현재의 자유공원 아래 웃터골에서 제물포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건학 이념인 유한흥국(流汗興國)의 기치아래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요행을 바라지 않고 값진 땀을 흘려, 나라를 일으키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이 연마한 지식으로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밝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양심을 가지고

    썩지 않는 우리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20172월 제61회 졸업식(211)을 거쳐, 그간 37,745명을 배출하였다.

     

     

     

     

     

    신포패션문화의 거리

     

    인천 최초의 근대식 상설시장이었던 신포시장은 1895년경 어물전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패션문화를 중심테마로 다양한 아이템을 가진 곳이다.

    젊음의 거리 또는 중년, 노년에게는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재래시장과 현대식 시장이 접목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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