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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지사벽담동화대종사비(愛國志士碧潭東華大宗師碑)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7. 9. 26. 06:05

    애국지사벽담동화대종사비(愛國志士碧潭東華大宗師碑)

     

     

     

     

     

     

     

     

     

     

     

     

     

    벽담(碧潭) 방동화(房東華) 연보(年譜)

     

    이름(호적명)은 동화(東華), ()는 하룡(河龍)이고, 법명은 묵연(黙然), 법호는 벽담(碧潭)이다.

    본관(本貫)은 남양(南陽)이고 속성(俗姓)은 방()씨이다. 족보명은 용원(龍源)이다.

     

    188788(1) 제주도 중문면(中文面) 대포리(大浦里) 371번지에서 부친 방우필(房佑弼),

    모친 여산 송씨 송양아(宋良娥)의 장남으로 출생.

    1890(4), 김지(金志)가 주도한 경인민란(庚寅民亂) 발생.

    1891(5), 2, 이완평·현계환의 민란. 1894(8) 동학농민운동

    1895(9), 6.20. 부친 방우필 사망(재적부) 남양방씨가승보(南陽房氏家乘譜)(2011.182)에는

    1912년에 부친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발생.

    1896(10), 제주도 강유석, 송계홍의 병신민란.

    1897(11), 1.20 중문면 하원리 한문사숙에서 김성균(金成均)선생에게 사략(史略통감(通鑑사서(四書)등 수학 시작.

    1898(12), 방성칠의 무술민란.

    1901(15). 신축천주교란(이재수의 난)

    1905(19). 을사늑약 체결.

    1906(20), 일본, 조선에 통감부설치

    1907(21), 하원리 한문사숙에서 사서 수학 마침

    1909(23). 3.25 모친 송양아 별세, 모친 장례후 출가 결심.

    관음사 전각 기공에 참여하여 강창규·김석윤 스님 등과 봉려관 비구니의 관음사 창건에 적극 협력함.

    1910(24), 한일합방.

    1911(25), 봉려관의 좌면(중문면) 하원리에 법정사(法井寺) 창건.

    1913(27). 4.8. 강창규 스님의 주선과 안내로 경북 경주군 양북면 대본사 기림사(祈林寺)에서

    도하 우전(度河宇典)스님을 은사로 출가함.

    1913.5.1~1918.3.25 : 경북 문경군 대승사(大乘寺) 강원에서 김혜옹(金慧翁)스님에게 내전(內典)

    사미과·초등과(사집과중등과(사교과수의과(隨意科)졸업(방동화승적첩)

    1914(28). 기림사에서 인연된 김연일·강민수·정구용·김인수·김용충·장림호 스님 등

    6명을 제주도에 입도케 안내하여 법정사에 주석케 함.

    1915(29). 4.8.기림사에서 은사 도하 우전을 계사로 하여 사미계 받음.

    1918(32). 대승사 강원 수학을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옴. 법정사에서 김연일. 강창규. 방동화 의형제를 맺고

    항일운동 의지를 결집함. 7월말(. 6). 방동화. 박주석을 찾아가 항일의거에 동참할 것을 권유.

    98일 박주석 법정사에 가서 거사 참여. 914. 김연일. 불무황제(佛務皇帝)로 즉위식 거행.

    충지회 김연일, 좌대장 방동화, 우대장 강민수, 선봉대장 강창규, 선봉집사 최태유·김봉화, 선봉좌익장 이종창,

    중군대장 양남구, 후군대장 김삼만 등의 부서를 정하고 이후 각 마을에 배포할 격문 3~4통 작성,

    곤봉, 화승 총3, 깃발 6기 등을 제작, 의거 준비. 919(8.15). 우란분재에 신도 30명 법정사에 집합,

    기도, 거사 통보. 1918107(양력), 김연일·방동화 등은 법정사에서 거사 성취 기도를 하고,

    선봉대장 강창규와 우대장 강민수, 모사 박주석·정구용·장임호 등의 지휘하에 30여 명의 항일무장봉기대가 법정사를 새벽에 출발함.

    중문리에 이르렀을 때 참여자가 700여 명에 이름. 중문리에 도착한 봉기군은 일본 경찰 3명을 포박하고

    구금되어 있던 13명 석방. 중문 경찰관주재소의 기물을 부수고 주재소 건물을 불태움.

    오전 11시경 서귀포경찰관 기마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진격하여 봉기군이 흩어짐. 이후 참여자는 검거되고 법정사 불태워짐.

    방동화는 한 달 가량 피신하다가 1112일경 일경에 체포되어 1126일 구속 기소됨.

    191924. 방동화 등 관련자 46명이 소요 및 보안법 등으로 31명에게 징역형이,

    15명에 각각 30엔 벌금이 선고됨. 방동화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음.

    1920(34), 칙령 제120(1920)에 의거 징역 3년으로 감형.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 중 옥사자.

    강수오(姜壽五): 1918.12.7. 옥사(강창규의 동생)

    강춘근(姜春根): 1919.1.6. 옥사

    김두삼(金斗三): 1919.8.21. 목포형무소에서 옥사

    김봉화(金奉和): 1919.12.1 대전감옥에서 옥사

    1922(36), 23일 만기 석방, 목포감옥 출옥.

    서귀포 좌면(중문면) 하원리 1071-1번지 소재 범화사 복원 불사 참여.

    법화사 북쪽 2.5km지점 한라산 산록에 반평 남짓한 굴을 파서 수행처로 삼고 기도함.

    1923(37), 3월 하원리 산43번지의 토지 500평을 임대하여 초가 법당 15평을 건립하여 원만암 창건.

    (河源鄕土誌)).하원마을회.1999.366)

    1925(39).4.8. 경남 동래 북면 범어사에서 만하 승림(萬下勝林)을 계사(戒師)로 비구계 받음

    (방동화 僧籍牒昭和15(1940) 87祈林寺 주지 金擎林 발행)

    1927(41), (소화2)4.15~1932.7.15 강원도 금강산 마하연선원(摩河衍禪院)에서 안거,

    법랍(法臘)6(:) 성만(成滿).(방동화 승적첩)

    1932(46), 제주해녀항일운동

    1936(50), 4.8.제주도 중문면 하원리 기림사 포교소 감원(監院)에 피임(被任)

    1937(51), 7.7 중일전쟁 발발

    1938(52) 4.8.김호득(金瑚得, 1922~?). 원만암엣서 방동화를 은사로 출가.

    같은 날, 은사 방도화에게 사미계를 받음. 법명 법성(法性).

    1940(54) 3.15.상좌 법성(김호득).원만암 방동화스님에게 사미과·초등과(사집과) 수료

    5.30 대본산 기림사 하원포교당(원만암).포교규칙 제 9조에 의해 포교소 설치계 제출.

    (1940.12.5. 4162.조선총독부 관보128. 652~653. 조선총독부 관보 불교관련자료집.

    일제시대 불교정책과 현황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2001.962

    7.15.원인상(元仁常 : 혜관스님). 경북 경주군 대본산 기림사에서 방동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받음

    (<원인상 수행이력서>. 제주교무원. 교도책임자 명부(이력서철); 제주불교사연구회.근대제주불교사 자료집.2004.237)

    1941(55), 현재봉(玄才奉)이 일본 대판 동성구 교포사원 고려선원의 김종래 스님께 불법을 배우고

    1941년 귀국하여 원만암 방동화스님께 출가함. 1941.12.8.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발발.

    1942(56), 3.20 윤두화(尹斗化).1915.10.29~?)원만암 방동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함

    3.27. 상좌 윤두화. 원만암에서 오이화(吳利化)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윤두화수해이력서. 앞의 근대제주불교사자료집.257)

    상좌 현재봉. 남원면 남원리에 초가 3간의 법당과 4간의 객실을 건립하여 선광사(善光寺)창건(한국전쟁피해조사보고서.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Ⅱ』제주도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2004.86)

    1943(57). 연말부터 일본군 제주정뜨르비행장(지금의 제주공항)건설 착수. 19445월 완공.

    1945(59). 일본군 7호작전에 의해 제주도에 제58군 창설. 병력 74,781명 주둔. 제주도 각처에 진지 및 진지동굴 수백곳 건설. 815. 일본 항복. 조국 광복. 일본군 소속 한국인 군인·군속 17,161명 현지 제대.

    1023일부터 일본군 49,619명과 일본민간인 860명 본국 소환.

     101. 상좌 윤두화가 사계리에 법흥사 창건

    119. 제주도에 미군정 실시. 59군정 중대 상륙. 제주도 군정장관은 스타우드(Thurman.A.Stout)소령.

    해외의 제주인. 56천여명 귀환.

    1130. 제주도 불교청년단 결성. 방동화의 맏상좌 원문상(元文常.1908~1950)의 활약으로 불교청년단 조직됨.

    상좌 원인상은 불교청년단의 총무로 선임됨.

    122~3. 조선불교혁신 제주도승려대회 개최. 53개 사찰. 승려 73. 화주 9명 참석함.

    원만암에서는 방동화·오창진·김택춘·김호득·양홍기 등 5명 참여. 대회 제2일인 123. 방동화 스님 제주교구 제주교무원장에 추대됨.

    1946(60), 8.1 제주도가 전남에서 분리. 도제(道制) 실시. 콜레라 창궐로 제주도 사망자 369.

    1947(61) 2.23.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에서 승려 이일선(李一鮮) 3명의 공동의장으로 선임됨.

    3·1절 기념행사 중 군중에게 결찰 발포로 6명 사망, 8명 중상, 4.3사건의 도화선이 됨.

    3.10. 경찰 발포에 항의한 제주도의 민·관 총파업.

    313일과 41.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 내도. 응원경찰 421. 서북청년단 단원 500명 제주도 급파.

    1년간 2,500명 구금. 서청 단원의 테러와 고문 횡행.

    1948(62). 43일 새벽 2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와 인사 공격. 제주도의 비극 4.3사건 일어남.

    115일 중문지서 공격. 3시간 동안 점거.

    1124. 토벌대 하원리 주민 학살. 원만암에 방화하여 전소시킴. 양홍기 스님 총살 당함.

    1948년 가을,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제주불교계의 피해가 막심했다.

    하원리의 원만암, 관음사, 서관음사, 석굴암, 소림사, 용장사, 월정사, 법화사, 광룡사, 귀이사, 극락사,

    금천사, 묘음사, 백양사, 북촌포교소, 수덕사, 외꼴절 등 16개소 사찰 전소.

    일부 소각된 절은 선광사, 금붕사, 본원사 등 3개 사찰. 법당과 요사채가 파괴되고 폐허가 된 절은 백화사, 불탑사, 원당사,

    용주사, 월라사, 호촌암, 단산사, 두수사, 봉주사, 고관사, 고운사, 보광사, 수산사, 은수사 등 14개 사찰임.

    (한국전쟁피해조사보고서.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Ⅱ』제주도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2004.)

    제주 불교계 인명피해는 10(용장사 백인수 스님, 월정사 김덕수 스님, 원만암 영홍기 스님. 단산사 강기규 스님,

    금봉사 이성봉 스님, 북촌 포교소 김유신 스님, 보광사의 성명미상 스님, 수산사의 고정선 스님,

    외꼴절 신홍연 스님)이 토벌대에 총살되었고, 이세진 스님(1949.7)과 이일선 스님(1950.8.4.).

    방동화의 맏상좌 원문상(1950.7)은 예비검속되어 수장(이세진.이일선) 또는 총살되었다.

    1949(63), 4.8. 신도 30여 명과 함께 중문리 2264번지에 천제암 창건 시작.

    1950(64), 4.2. 625일 북괴의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1951(65), 제주교무원 교무회의 의장에 선임됨. (불교신문.1951.12.11.)

    1952(66) 법화사에 육군 제3숙영지 설치.

    1962(76) 4.8. 교도(신도)회장에 김두화 선임.

    10. 대한불교 조계종에 광명암 등록. 1970(84) 12.28. 오전 10.

    중문면 회수리 856번지에서 세수 84. 법랍 57년으로 입적하다.

     

    벽담 방동화 스님의 열반게(涅槃偈)

    사대(四大)를 빌려 이 몸을 기탁하였으니 假此四大以爲身(가차사대이위신)

    마음은 본래 무상(無生)이지만 인하여 경계가 있다. 心本無生因境有(심본무생인경유)

    앞의 경계 없다면 마음 역시 없나니 前境若無心亦無(전경약무심역무)

    죄와 복은 환()과 같으니 일어남도 역시 없도다. 罪福如幻起亦滅(죄복여환기역멸)

     

    1995815

     

    대한민국 정부에서 법정사 항일운동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벽담 방동화 스님께 추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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