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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왕(義王)의 옛 중심, 사근행궁터(肆覲行宮址)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12. 30. 05:30

    의왕(義王)의 옛 중심, 사근행궁터(肆覲行宮址)

     

     

     

     

     

     

    사근행궁터(肆覲行宮址)

     

    이곳은 조선왕조(朝鮮王朝) 22대 정조(正祖)가 수원(水原) 화산(華山)에 있는

    현륭원(顯隆園)을 전배할 때 쉬어가던 유서 깊은 터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양주(楊州) 배봉산(拜峯山)에 있던 생부(生父)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원침(園寢)을 천장(遷葬)하던

    1789106일 상여(喪輿)가 이곳에 이르자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온천(溫陽溫泉)에 행차할 때

    잠시 쉬어간 일이 있어 이때 마중한 노인들에게 경기감사(京畿監司)로 하여금 쌀을 나누어 주었던 연고로

    이 자리에 행궁을 지으니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 또는 사근평행궁(肆覲坪行宮), 사근참행궁(肆覲站行宮),

    사근참(肆覲站), 사근참주필소(肆覲站駐蹕所), 사천행궁(沙川行宮), 사근천행궁(沙斤川行宮), 사근행궁(沙斤行宮),

    사근천참(沙斤川站), 사천참(沙川站)이라 하였고, “주필행궁(駐蹕行宮)”이란 현액을 걸어 이곳이 행궁임을 알렸다.

    정조는 그후에도 수 차에 걸쳐 이곳에 들렸는데, 특히 1795년 윤210일과 15일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와 함께 들러 수라(水刺)를 드니 그 소요경비가 55149푼에 이른다.

    왕궁과 원침의 중간지점인 이 자리에 억울하게 돌아간 선왕의 원혼을 달래고자

    머나먼 능행을 했던 정조의 큰 뜻을 교훈삼아 의왕(義王)의 행정중심지인 이 자리에 효행을

    몸소 실천한 정조의 거룩한 뜻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우리의 뜻을 모아 이 돌에 새긴다.

    198911

     

    머릿글 이희승(李熙昇), 글 이승언(李承彦), 글씨 정형모(鄭亨謨)

    백운회원 일동(白雲會員 一同) 세움

     

     

     

     

     

    의왕(義王)의 옛 중심, 사근행궁(肆覲行宮)

     

    지금의 의왕시청 별관 자리는 옛 사근행궁터로 의왕의 옛 중심이자

    현륭원(顯隆園)에 능행을 가던 정조(正祖)가 쉬어가던 곳이다.

    1789년 능행길에서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기리며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으며,

    이곳에 행궁을 지어 그 명칭을 사근행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의왕지역 3.1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19331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당시에는 면사무소였던 이 자리를 중심으로

    800여 명의 시위대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일부는 지지대고개에 올라 횃불을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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