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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선열 면암 최익현선생을 모신 사당, 모덕사(慕德祠)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1. 9. 04:30

    순국선열 면암 최익현선생을 모신 사당, 모덕사(慕德祠)

     

     

     

     

     

     

    모덕사 대의관(慕德祠 大義館) – 유물전시관

     

    모덕사 유물전시관(대의관)은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1997년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건립하였다.

    이곳에는 면암 선생이 스승인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792~1868) 선생으로부터 받은 ()면암(勉菴)’ 현판,

    고종황제의 밀지(密旨), 문방구를 비롯한 소품과 교지(敎旨)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대마도 감옥에서 단식으로 순국 전에 오직 나라를 걱정하며 고종황제께 마지막으로 올린 유소(遺疏)가 전시되어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께서 생존에 사용하던 물품 총 9128점이 전시되어 있다.

     

     

     

    춘추각(春秋閣)

     

    면암선생의 서책, 서간문 등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藏書閣), 제사용 집기 등을 보관하는 제기실 성격의 건물이다.

     

     

     

    영모재(永慕齋)

     

     

     

     

    면암 최익현선생 고택(勉菴 崔益鉉先生 古宅)

     

    면암 선생이 거주하던 집으로 1900(68) 출생지인 경기도 포천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였으며,

    안채와 사랑채, 조상의 위폐를 모신 영모재(永慕齋)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구동정사(龜洞精舍) 또는 중화당(中和堂)이라 하였는데,

    면암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애국지사를 모아 강의하고 독립운동을 논의하여

    1906년 의병을 일으키게 된 산실이며, 면암 선생이 순국한 뒤에 후손이 계속 살았던 집이다.

    당시 일본의 가금연금 중에 계셨으나 1906년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다할 것을 결심하고

    감시를 피하여 야간을 틈타 떠나신 곳이다. 

     

     

     

     

     

     

     

     

     

     

     

     

    모덕사 앞에 위치한 우목저수지

     

     

     

     

     

    모덕사(慕德祠) 청양군 문화재자료 제152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우(祠宇), 1914년에 건립되었다.

    현판(懸板)의 글자는 고종 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艱虞孔棘 慕卿宿德) 라는 구절에서 ()’자와 ()’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18331906)의 호는 면암,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1855년 문과 급제 후 대원군(大院君)의 시책을 비판하여 제주도에 유배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상소하여 여러 차례 구금되었다.

    1900년에 포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전라도 태인·순창에서 의병(義兵)을 모집하였다.
    왜군에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에서 단식(斷食)하던 중 74세에 순절(殉節)하였다.

    묘소가 처음에는 논산군 노성(魯城)에 있었으나, 예산군 광시(光時)로 옮겼다.

    사우 건립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문중의 사당으로 가장하여 건립하였다.

    그후 1982년에 유물전시관, 1985년 장서각(藏書閣)인 춘추각(春秋閣), 1989년 영당(影堂)을 지었다.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송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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