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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忠義祠) - 윤봉길의사 추모 사당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2. 3. 19:30
충의사(忠義祠) - 윤봉길의사 추모 사당
충의사(忠義祠) - 윤봉길의사 추모 사당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인 윤봉길의사(尹奉吉義士)가 태어나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농촌계몽과 애국정신을 고취한 곳으로,
윤의사의 의거와 애국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상해의거 36주년 기념일인 1968년4월 29일에 건립되었다.
1978년 충의문, 홍문 등을 세우고 충의사를 중건하였다.
매년 4월 29일에는 윤의사의 애국충정을 기념하는 매헌문화제가 열린다.
윤봉길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항(尹璜)과 모친 김원상(金元祥) 여사 사이에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1세 때에는 예산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그 이듬해 인 12세 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하였다.
19세되는 해에는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농촌부흥운동을 애국운동이라하여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윤의사께서는 1930년 23세 되던 해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윤의사 나이 25때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개최한
일제의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기념 축하식장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중국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과
상해의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사다쓰구(河端貞次)를 즉사시키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 무라이 총영사, 토모노 거류민단 서기장 등을 중상시켰다.
거사에 성공하고 윤의사는 즉시 체포되어 그해 5월 25일 상해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동년 11월 18일 일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이감되었다가
한 달 뒤인 12월 19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에서 총살형으로 25세 일기로 순국하였다.
그 후 13년이 지난 1945년 해방되고 광복회 회장이셨던 이강훈 선생이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윤의사의 유해를 모셔다가 서울 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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