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Today
Yesterday
Total
  • 윤봉길의사가 태어난 생가, 광현당(光顯堂)과 부흥원(復興院)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2. 7. 04:30

    윤봉길의사가 태어난 생가, 광현당(光顯堂)과 부흥원(復興院)

     

     

    광현당(光顯堂)

     

    이 집은 윤봉길(尹奉吉)의사께서 1908621일 부친 윤황(尹墴), 모친 김원상(金元祥)의 장남으로 태어나 4세까지 사시던 집이다.

    의사의 본명은 우의(禹儀)이고, 아호는 매헌(梅軒)으로 고려조(高麗朝)의 명장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장군의 후예이다.

    이곳은 사방으로 냇물이 둘려 있으므로 의사께서 후일 도중도(島中島, 한반도 가운데 섬이란 뜻)라 이름하고,

    왜놈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서 온갖 시름을 달래며 독립운동의 앞날을 설계하면서 정신수양을 하시던 곳이다.

    이집의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의사의 증조부 윤자(尹梓) 때부터 거처했다 하며 1974년에 정부에서 중수했다.

     

     

     

     

     

     

     

    우진회 산실(遇進會 産室)

     

    매헌 윤봉길의사 행낭채는 윤봉길의사가 중심이 되어 독립사상으로 뭉친 우진회의 산실이다.

    1944년부터 1946년까지 우진회란 이름으로 존속했지만 1946년에 다시 월진회(月進會)로 환원했다.

    현재 공식 명칭은 초대 회장이던 그를 기리는 매헌윤봉길월진회(梅軒尹奉吉月進會)로 쓰고 있으며,

    윤봉길의사의 평화독립사상을 선양하고 있다.

     

     

     

     

     

     

     

     

     

     

     

    부흥원(復興院)

     

    이곳은 묘표 사건에 충격을 받은 매헌 윤봉길의사가 문맹퇴치의 일환으로

    협소한 저한당(抯韓堂)의 사랑방에서 운영해 오던 야학당(夜學堂)의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넓은 공간의 야학당을 건립하여 체계적인 야학(夜學)과 농촌부흥운동(農村復興運動)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무지(無知)는 야학(夜學), 윤독회(輪讀會), 독서회(讀書會), 학예회(學藝會),

    가난은 공동구매(共同購買), 저축(貯蓄), 토산품애용(土産品愛用), 부업장려(副業獎勵), 생활개선(生活改善) 등으로,

    단결은 월진회(月進會), 수암체육회(秀岩體育會), 위친계조직(爲親契組織), 공동작업(共同作業), 공동식수(共同植樹) 등의

    목표를 세우고 1928225일 자필로 쓴 대들보(보물 제568호 지정, 매헌기념관 전시)의 상량식(上梁式)을 가진 후

    3대 목표운동의 일환으로 매월 14일 월례농촌계몽애국강연회(月例農村啓蒙愛國講演會)를 개최하였고,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망명(亡命)과 의거(義擧)를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부흥원(復興院)이다.

    현 부흥원은 1974년 충의사(忠義祠) 성역화사업(聖域化事業) 조성 시 복원하였다.

     

     

     

     

     

     

    윤봉길의사(尹奉吉義士) 선서문(宣誓文)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祖國)의 독립(獨立)과 자유(自由)를 회복(回復)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一員)이 되야
    중국(中國)을 침략(侵略)하는 적()의 장교(將校)를 도륙(屠戮)하기로 맹세(盟誓)하나이다.


    대한민국 14426
    선서인(宣誓人) 윤봉길(尹奉吉)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매헌 악강유허비(梅軒 嶽降遺墟碑)

     

    악강(嶽降) : 산악의 신령한 정기로써 위인을 낳았다는 뜻. (詩經 崧高章)

     

     

     

    도중도교(島中島橋)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