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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산시 궐리사(烏山市 闕里祠) - 경기도기념물 제147호(1994. 4. 20 지정)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2. 15. 05:16

    오산시 궐리사(烏山市 闕里祠) - 경기도기념물 제147(1994. 4. 20 지정)

     

    궐리사는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孔瑞麟, 1483~1541)이 서재(書齋)를 세워 후학을 지도하던 장소이다

    . 공서린은 중종 때의 문신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에 정조가 이 장소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정조 16(1792)궐리사(闕里祠)’라는 현판을 내려 주었다.

    조선으로 이주한 공자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이곳에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동성 곡부현(曲阜縣)의 실제 지명을 붙인 것이다.

    궐리사는 고종 8(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 31(1894)에 제단을 마련하여 다시 제향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고종 37(1900)에 건물을 갖추어 성적도(聖蹟圖)를 모셨다.

    현재 궐리사에는 외삼문에 성묘(聖廟)’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계단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경내에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성적도를 모신 장각(藏閣)이 있다.

    그 사이 공간에 19937월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상(孔子像)이 있다.

    그 외에도 1996년 세운 강당인 행단(杏壇)과 양현재(養賢齋) 등이 있다.

    오산 궐리사는 논산에 있는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로 꼽힌다.

     

    경기도 오산시 매홀로 3 (궐동)

     

     

     

     

     

     

     

    내 졸렬한 시를 붙여 한번 웃고자 함 - 공서린

     

    가을바람 저녁에 일어 흰 이슬 서리가 되니

    때는 팔월이라 초목이 시들어 누렇구나

    뜬 구름 막막해 하늘 끝에서 말리고

    휘영청 밝은 달이 빈 방을 비추네

    홀로 앉아 님을 생각하니 수심이 끝이 없고

    빈자리에 누워 이불을 제치니 밤중도 되지 않았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은 가고 날이 새니

    탄식하고 슬피 울며 고개 들고 언덕에 오르네

    만리 하늘 가 산 구름 속에서 우는 것은 서로 부르는 변경의 기러기요

    빈 계단가에 심야를 재촉하는 것은 다투어 우는 쓰르라미로다.

     

     

     

     

     

     

     

     

     

     

     

     

     

     

     

     

     

     

     

    국내 유일의 행단(杏壇)

     

    본 행단은 중국 곡부(曲阜) 성묘 대성전 앞에 있는 행단을 참고로 해서

    누각형(樓閣型) 한식목조(韓式木造)로 건축한 국내 유일(唯一)의 행단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인의사상(仁義思想)을 천하에 구현하고자 제자들과 같이 14년을 철환천하(轍環天下)하다가

    도종불행(導終不幸) 할 것을 알고 14년만에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공자께서는 행단에 앉아 고금(鼓琴)과 현가(絃歌)를 즐기고 제자들을 독서(讀書)를 했다.

    이때 시(). ()를 산술(刪述)하고 악()을 바로잡고 역()을 찬()하고

    춘추(春秋)를 작()하니 만세입교(萬世立敎)의 수처(首處)가 되었다.

    이제 궐리사가 유교문화(儒敎文化)의 성지(聖地)로 부각되니

    공자께서 평소 부해욕거(浮海欲居)하시던 소원이 이루어 지신 듯 이를 예상이라도 하신 듯

    맹자(孟子)의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의 묘()함이 문산(文山)의 정기(精氣)와 조화(造化)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묘명현문헌공공서린선생유허비(己卯名賢文獻公孔瑞麟先生遺墟碑)

     

     

     

    오산 궐리사(烏山 闕里祠)

     

    오산 궐리사는 조선 정조16(1792) 대왕께서 창건하시고 친필 사액하신 공자님의 사당이며,

    궐리란 공자께서 태어나신 고향으로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 있는 지명이다.

    공자님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성묘본당(경기도 기념물 제147)

    공자(孔子)님의 일생(一生)을 화폭에 담은 성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가 있으며,

    성묘 서쪽으로는 공자님의 본향인 중국 곡부시에서 기증받은 대형 석조 성상(聖像)

    안자, 증자, 자사, 맹자상을 모신 성상전이 있고,

    공자 문화전시관과 공자께서 삼천 제자에게 강학을 하시던 중국의 행단과 유사한 행단이 위치해 있다.

     

     

     

    궐리사 성적도(闕里祠 聖蹟圖)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1974. 9.26 지정)

     

    궐리사 성적도는 유교의 성인(聖人)인 공자의 생애를 그림과 글로 목판에 새긴 것이다.

    고종 41(1904)에 공자의 76세손인 한국인 공재헌(孔在憲)이 조병식(趙秉式) 송병선(宋秉璿) 등과 함께

    중국 산동성에서 성적도를 구해 와 이를 새겨 목판을 만들었다.

    이 목판은 피나무로 되어 있으며 모두 60장이다. 한 장의 크기는 세로 32cm, 가로 70cm, 두께 1.5~2cm이다.

    목판에 새겨진 그림은 비교적 정교하나 글은 그렇지 못하다.

    궐리사의 성적도 목판은 실제로 책을 찍는 데에 사용되었다. 근대 국가로 이전하던 시기에

    유림들은 유학의 명맥을 잇기 위해 공자를 구심점으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궐리사의 성적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적도로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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