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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유산 조선왕릉(世界遺産 朝鮮王陵), 서울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8. 2. 10. 04:30

    세계유산 조선왕릉(世界遺産 朝鮮王陵), 서울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정릉(靖陵)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中宗,1488-1544, 재위 1506-1544)의 단릉(單陵)이다.

    중종의 능은 원래 고양시 서삼릉 구역에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1515)와 함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모셔졌으나,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1562년에 문정왕후의 주도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1565)는 이곳에 합장되기를 원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발생하자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를 이곳이 아닌 태릉(泰陵)에 모셨다.

    봉분에는 십이지신상을 세긴 병풍석을 세우고 난간석을 둘렀다.

    ※단릉(單陵): 왕이나 왕비를 단독으로 모셔진 형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왕과 왕비의 능이 정자각 뒤편 좌우의 서로 다른 언덕위에 조성된 형태.

     

     

     

     

     

     

     

     

     

     

    조선 제9대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릉(貞顯王后陵)"

     

    정현왕후릉(貞顯王后 陵)은 성종의 계비(繼妃)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이 능은 선릉 동쪽 언덕에 안장되어 있는데, 봉분에 병풍석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선릉과 비슷하다.

    능은 병풍석 없이 난간만 돌렸고, 석주(石柱)의 주두(柱頭)에는 초기 난간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릉, 정릉과 마찬가지로 정현왕후릉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시신이 있는 곳까지 불타는 수모와  함께

    도굴을 당해 능침 속에는 유해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정현왕후 윤씨는 파평(坡平) 윤씨(尹氏)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로 태어나

     성종 4(1473) 12세의 나이로 숙의(淑儀)에 봉해졌다.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승하(성종 5, 1474)하고 원자(元子, 후에 연산군(燕山君))를 낳은

    숙의(淑儀) 윤씨(尹氏)가 계비(繼妃)가 되었으나 폐위되자, 1480(성종 11)에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슬하에 중종(中宗)과 신숙공주(愼淑公主)를 낳고 중종 25(1530)에 승하하였다.

    폐비 윤씨로 크게 곤혹을 치른 성종은 정현왕후에 대해 "부녀는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는 사람이 적은 법인데,

    현명한 왕비를 맞아들인 후부터 내 마음이 편해졌다."라는 글을 지석에 쓴 걸로 봐선

    그녀는 성종의 여자관계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9대 성종 선릉(成宗 宣陵)

     

    선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서쪽 언덕에 조선 제9대 왕인 성종대왕이,

    동쪽 언덕에는 계비(繼妃)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이 두 릉의 남쪽 가운데 위치한다.

    성종은 1457730일 경복궁에서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睿宗)14691128일 재위 14개월 만에 승하하자

    정희대비(세조의 비) 명에 따라 13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고

    조세제도(租稅制度)로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유교예법을 확립하고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밖으로 윤필상 등을 보내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야인을 물리쳐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왕비로는, 원비인 공혜왕후(1456~74)는 후사 없이 승하하여 파주 순릉(順陵)에 모셔졌고,

    연산군의 모후인 윤씨(1455~1482)는 폐비가 되어 서삼릉의 회묘(懷墓),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이 곳 선릉의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성종은 39후궁에게서 1612녀를 두고 14941224일 창덕궁에서

    보령 38세에 승하하니 재위기간은 251개월이다.

    정현왕후는 윤호(尹壕)의 딸로 1462625일 태어나, 14736월 숙의(淑儀)가 되었고,

    1480118일 왕비가 되어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다.

    1530822일 경복궁에서 보령 69세로 승하하여 1029일 선릉에 장사되었다.

    성종대왕릉은 병풍석의 면석(面石)에는 구름 문양 속에 십이지신(十二支神),

     지대석(地臺石)과 만석(滿石)에는 연꽃문양,

    인석(引石)에는 해바라기와 모란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석(裳石) 및 난간석이 있다.

    정현왕후릉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이곳 석물들은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균형미가 있다.

     

     

     

     

     

     

     

     

     

     

     

     

    선릉 조성과 연산군(燕山君)의 비밀(祕密)

     

    조선 제9대 왕 성종(成宗)은 세분의 비()가 있다.

    첫 번째 비는 공혜왕후(恭惠王后)로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

    두 번째 비는 폐비 윤씨(廢妃 尹氏)로 왕후가 되었지만 곧 폐위되었으며,

    세 번째 비 정현왕후(貞顯王后)는 폐비 윤씨가 폐위된 후 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연산군(燕山君)은 조선 제10대 왕으로

    자신이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선릉을 조성하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조선 왕릉을 만들 때에는 돌아가신 분의 생애를 비롯하여 혼인한 인물, 가계 등을 상세히 기술한

    지문(誌文)을 작성하고 왕에게 최종 검토를 받은 후 땅에 묻는다.

    성종 선릉의 지문에도 이 원칙에 따라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기록하였는데,

    연산군의 성종의 지문을 마지막으로 검토하던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종 선릉 정자각 상량문(成宗 宣陵 丁字閣 上樑文)

     

    목조건물에는 새로 짓거나 고친 내용을 상량문(上樑文)에 기록하여 건물 상단에 넣는다.

    2007년 선종 선릉 정자각을 수리하던 중 종도리(宗道里)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선릉 정자각을 고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 발견된 선릉 정자각 상량문은 1706(숙종 32)에 문신인 최석항(崔錫恒)이 작성한 것으로

    선릉에 안치된 성종의 업적과 조선 왕조를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22대 왕 정조(正祖)가 성종(成宗) 선릉(宣陵)에 올리는 제문(祭文)

     

    우리 왕가의 성대한 때는 / 我家盛際(아가성제)
    성종(成宗)의 시대였으니 / 聖祖之世(성조지세)
    예악이 백 년에 흥기하고 / 禮興百年(예흥백년)
    위엄이 변방까지 이르렀도다 / 威訖二裔(위흘이예)
    성군의 덕에 비길 왕비가 계셨으니 / 俔天曰配(현천왈배)
    왕비의 위의가 드러나지 않았던가 / 不顯坤儀(부현곤의)
    이에 문덕을 지닌 아들 중종(中宗)이 탄생하니 / 迺誕文子(내탄문자)
    거듭 나라의 기반이 공고해졌네 / 再鞏磐基(재공반기)
    능으로 행차하여 삼가 재계하고 / 龍旂夙戒(용기숙계)
    경건히 왕릉에 참배하니 / 象設祇省(상설기성)
    작은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 降監微誠(강감미성)
    큰 명을 주어 편안하게 하소서 / 綏以景命(綏以景命)

     

    - 弘齋全書(홍재전서) -

     

     

     

     

     

    선정릉(宣靖陵) 재실(齋室)

     

    재실(齋室)은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참봉(參奉, 9) 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陵域)을 돌보았다.

    주요 시설로는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祭禮) 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원래는 성종대왕릉과 중종대왕릉에 각각의 재실이 있었으나

    대한제국 시절에 2개소의 재실을 현재의 재실 1개소로 합쳐 지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선릉, 정현왕후릉, 정릉 제향을 모시는 향대청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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