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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산궐리사(烏山闕里祠) 은행(銀杏)나무의 유래
    자연과 함께/나무(木) 2018. 2. 14. 22:14

    오산궐리사(烏山闕里祠) 은행(銀杏)나무의 유래

     

     

    보호수(은행나무)

     

    고유번호 : 경기 오산 - 3

    수령 약 500

    높이 17m, 나무둘레 4.8m,

    지정일자 : 1982. 10. 15

     

     

     

     

     

     

      

    오산궐리사(烏山闕里祠) 은행(銀杏)나무의 유래

     

    화성궐리사(華城闕里祠)의 역사를 상징하는 은행(銀杏)나무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490년전 조선 중종 14(1519)으로 시작된다.

    이때 은행나무를 손수 심은 사람은 기묘사화(己卯士禍)의 명현 문헌공(文獻公) 공서린(孔瑞麟) 선생이다.

    ()은 문과에 급제, 대사헌(大司憲)과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좌승지(左承旨)로 재직 중 기묘사화로 투옥되어 15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그러나 당파(黨派)에 휩싸여 재난을 당하게 되자 모든 것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서재(書齋)를 세우고

    뜰아래 은행나무를 심은 후 그 위에 북을 달고 제자(弟子)들의 권학을 독려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중종 33(1538) 공서린 선생이 다시 중종의 부름을 받아 경기(京畿) 황해(黃海) 양도감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에 발탁 되었으나 3년 후인 중종 36(1541) 별세하였고 은행나무도 이후 고사(枯死)하였다 한다.

    중국 곡부(曲阜) 공묘(孔廟)의 대성전(大成殿)과 행단(杏壇) 양편에

    향이 특이하고 구불구불한 무늬가 마치 용()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형상을 한 회()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공자께서 손수 심은 회나무다.

    그런데 이 회나무가 역대 국가의 성쇠(盛衰)에 따라 고사(枯死)와 회생(回生)을 반복하며 수 천년을 이어왔다.

    이와 같이 은행나무도 고사한지 200 여년이 지난 후 옛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1년이 수길씩 자라며 무성하자

    촌로(村老)들이 이를 보고 장차 공문(孔門)에 경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한다.

    그후 정조 16(1792) 가을 정조께서 경기감사(京畿監司) 서정수(徐鼎修)에 명하여

    공부자(孔夫子)의 성묘(聖廟) 창건을 지시하였으며 기백(畿伯)이 전교를 받들어 화사(畫師)를 보내

    문헌공의 서재 유허(遺墟)와 유정(遺井) 은행나무 등을 그려 가므로

    이때 궐리사(闕里祠)가 창건되고 은행나무가 오늘의 궐리사를 상징하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孔記 2561(20101) 화성궐리사

     

    경기도 오산시 매홀로 3 (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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