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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길원현감충렬비(申吉元縣監忠烈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8. 10. 6. 04:30

    신길원현감충렬비(申吉元縣監忠烈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5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문경현감(聞慶縣監) 신길원(申吉元)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화강암으로 된 가첨석, 비신, 방형대좌로 구성되어 있고, 대좌는 높이가 23cm이고 폭이 148cm이다.

    비신은 높이 191cm이고 너비 89cm, 두께 28cm 이다. 가첨석은 높이 46cm, 너비 123cm이다. 

    문경 향회(聞慶 鄕會)가 편찬한 기록에 의하면 신길원은 조선 명종(明宗) 3(1548)에 출생하여

    선조(宣祖) 9(1576)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동왕 23(1592)에 문경 현감으로 부임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는 현()의 군사 수십인과 더불어 왜적에 대항하다가 총상을 입고 붙잡혔다고 한다.

    왜장이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그에 굴복하지 않고 꾸짖으며 항거하다 사지를 절단당하여 장렬히 순국하였다.

    이후 조정에서 그를 좌승지로 추증하고 그 충절을 전하고자 숙종(肅宗) 32(1706)에 이 비를 세웠다.

    원래 이 비는 문경읍 문경초등학교 옆에 있던 것을

    1976년 문경새재 제1관문 안의 비석 군에 옮겼다가 1998년 현 위치에 비각을 세워 새롭게 단장했다.






    현감 신길원 충렬비


    충신은 반드시 효자 집안에서 구한다더니 신길원 현감의 경우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공은 어려서 이미 효성이 지극하여 자기 손가락을 자른 피를 약에 섞어 어머니를 연명케 하였고

    열네살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슬피울며 삼년 상을 마치니 보는 이가 눈물을 흘리었다.

    효행이 알려져 선조(宣祖)가 효자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병자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태학의 추천으로 참봉 벼슬 등을 거쳐 문경현감이 되어

    백성을 정성으로 다스리고 항상 성리학의 책을 읽어 규범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문경으로 왜적이 다가오자 모두 형세 불리함을 들어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공은 소리 높혀 말하되 내가 맡은 고을이 곧 내가 죽을 곳인데 어찌 피하리요 하고

    적은 군사를 독려하더니 적병이 이르자 달아나지 않는 이가 없고 홀로 종 하나만이 가지 않고 있거늘

    의관을 바로하고 관인을 차고 앉으니 적병이 칼을 빼어 들고 속히 항복하라를 가르키라고 협박하였다.

    공은 손을 들어 목을 가르키며 내가 너를 동강내어 죽이지 못함을 한탄하니 빨리 죽여서 나를 더럽히지 말라하니

    적병이 성내어 먼저 한 팔을 자르고 계속 위협하였으나 공은 얼굴빛도 바꾸지 않은 채 꾸짖기를 마지 않으니

    마침내 살을 발라내는 모진 죽음을 당하였다.

    때는 사월 이십 칠일이요. 나이는 마흔 다섯이었다.

    사람이란 조그마한 이해가 있어도 지킬 바를 바꾸지 않는 이가 드물거늘 하물며 시퍼런 칼날 밑에서이랴.

    공이야 말로 충렬의 선비이다. 좌승지로 추증된 공의 자는 경초(慶初), 본관은 평산(平山)인데,

    장절공 숭겸(壯節公 崇謙)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사헌부 지평 국량(國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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