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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독립유공자비(濟州 獨立有功者碑)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8. 11. 22. 21:30

    제주 독립유공자비(濟州 獨立有功者碑)







    목우김문준지묘(木牛金文準之墓)


    유공자 성명 : 김문준(金文準), 출생지 : 조천읍 조천리 3210번지

    출생·사망 : 1893~1936, 유공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 묘지소재지 : 대전국립묘지


    유공내용 : 일본 오사카에서 노동운동 신간회 활동 등에 헌신한 항일 독립유공자.

    1893(고종 30) 조천리에서 출생. 제주공립노림학교 및 조선총독부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노동총동맹, 신간회 활동과 동아통항조합을 통한 자주운항운동, 일본공산당의 확대 강화를 전개함.

    1930년 일제가 재일 조선노총을 일본 노동조합 전국협의회로 통합하여 없애고자 하는데 맞서 싸우다 결국 옥고를 치르고 출옥.

    193643세에 병사하자 1937325일 조천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가 2007년 대전국립묘지로 이장.

    비문은 죽암 고순흠이 썼으며 오사카 전기노조에서 비석을 세워 그 공을 기림.

     



    원천김순탁지묘(源泉金淳鐸之墓)


    유공자 성명 : 김순탁(金淳鐸), 출생지 : 조천읍 조천리 2840번지

    출생·사망 : 1895~1938, 유공훈격 : 대통령표창, 묘지소재지 : 조천읍 대흘리 가족선영


    유공내용 : 기미년 3.1조천만세운동과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를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야학을 전개한 항일 독립가.

    1895(고종 32) 조천리에서 출생, 1916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9193월 조천, 신촌, 신흥, 함덕 등

    4개 마을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그 후 제주청년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조천지부를 중심으로 노동야학, 소년운동, 여성계몽운동, 신좌소비조합운동

    민족주의 사상 보급과 지역주민의 계몽에 노력.

    193844세로 병사하자 안요검이 비문을 쓰고 친구들과 문화생들이 비석을 세워 지사의 공을 기림.

     




    옥사부생종묘(獄死夫生鍾墓)


    유공자 성명 : 부생종(夫生鍾), 출생지 : 조천읍 함덕리 3131번지

    출생·사망 : 1909~1936, 유공훈격 : 건국훈장 애국장, 묘지소재지 : 조천읍 함덕리


    유공내용 : 함덕 독서회, 청년동맹 및 혁명적 농민조함운동을 주도한 항일 독립유공자. 1909(융희3) 함덕리에서 출생.

    조천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제주청년동맹 함덕지부에 가입하여 동지를 애도하는 추모비 건립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에 5년을 언도 받음.

    1933년 김일준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향동회와 민풍진흥회 및 독서회를 조직하여 부녀자들에게 야학을 통하여

    우리글과 역사를 가르치며 농민대중을 본위로 혁명적 적생농민조합창립 운동을 도모하던 중 193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다 193628세로 목포형무소에서 순국하니 동지들이 묘 비문에 옥사(獄死)라 새겨 세우자 

     일경 주재소에서 묘비를 빼앗아가 유치하다가 광복 후 다시 찾아 묘에 세움.




    고김시성지묘(故金時成之墓)


    유공자 성명 : 김시성(金時成), 출생지 : 조천읍 조천리 2813번지

    출생·사망 : 1909~1935, 유공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 묘지소재지 : 조천읍 조천리 제1공동묘지


    유공내용 : 광주항일학생운동 당시 동맹휴학 및 비밀독서회인 성진회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유공자.

    1909(융희3) 조천리에서 출생. 광주 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동맹휴학을 주도했으며

    그 후 일본의 민족 차별정책과 일본학생들이 한국학생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에 분노,

    1926년에 창립된 항일 학생 비밀결사조직인 성진회를 재건하여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동맹휴학,

     집단시위 등을 주도하다 1930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6개월 넘게 옥고를 치룬 후 1935년에 사망함.

    죽암 고순흠이 비문을 지으면서 단기를 사용하였으며, 일본경찰에 한때 빼앗겼던 비석은 광복 후에 찾아서 묘에 다시 세움.

     




    기독교인김연배지묘(基督敎人金年培之墓)


    유공자 성명 : 김연배(金年培), 출생지 : 조천읍 조천리 2381번지

    출생·사망 : 1896~1923, 유공훈격 : 대통령표창, 묘지소재지 : 조천읍 와흘리


    유공내용 : 기미년 3.1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항일독립유공자. 1896(고종 33) 조천리에서 출생.

    1914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 19193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김시범, 백응선 등 14인 동지회 일원으로 조천만세운동 거사계획을 세워

    그 해 321일부터 4일간 조천, 신촌, 신흥, 함덕 등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함.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8월을 확정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가출옥 되었으나, 오랜 병환에 시달리다 1923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




    제주 독립유공자비(濟州 獨立有功者碑)


    여기 세워진 애국선열(愛國先烈) 비석은 제주의 수많은 독립유공자 중 일제강점기에 순국하시거나 타계하신 분들로

    동지들에 의해서 세워진 비로 일제탄압(日帝彈壓)에도 굴하지 않고 비문에 항일투쟁 내용이 담겨있고,

    생몰연도를 단기 또는 서기 등으로 표기하는 등 일본제국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담고 있으며,

    당시 일경(日警)에 의해 비석이 주재소에 유치되거나 매몰되었던 비()를 찾아 제주항일기념관 야외에 건립하게 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03 (조천리) 제주항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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