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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영산전(奉恩寺 靈山殿)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9. 3. 9. 04:26
봉은사 영산전(奉恩寺 靈山殿)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좌우보처인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가 합장하며 시립해 있고,
그 양 옆으로 16아라한(阿羅漢)이 열좌(列坐)하고 있다.
또한 불상 뒤로 후불탱화와 16나한도, 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다.
영산전은 나한님을 모셨기 때문에 나한님의 영험을 입고자 하는 불자들의 기도 발원이 간절한 곳이다.
영산전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전각으로 영산(靈山)이란 영취산(靈鷲山)의 준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영취산에서 설법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것이 유명하다.
이때, 부처님 제자들을 위시하여 수많은 대중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이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하고 이때의 법회장면을 그린 것이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영산전은 부처님과 제자, 그리고 영산회상도를 모셨기에 부르는 이름이다. 또는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른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영산전(靈山殿) 편액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 선생 글씨
지운영 선생은 조선 말기 및 근대 초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충주(忠州). 초명은 운영(運永). 호는 설봉(雪峰) 또는 백련(白蓮).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인 석영(錫永)의 형이다.
김정희(金正喜)의 제자로 여항문인(閭巷文人)이었던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시문 등을 배웠다.
1870년대말에 청계천 광교부근에 살던 역관(譯官)과 의관(醫官) 등 기술직 중인(中人)들이
강위를 맹주(盟主)로 하여 맺은 육교시사(六橋詩社)의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1880년대 초반에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주사(主事)로 개화정책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 후에 김옥균(金玉均)을 암살하기 위하여 일본에 건너갔다가 미수에 그치고,
일본경찰에 붙잡혀 강제귀국 당하여 원악지(遠惡地)로 유배당하였다.
1895년 유배생활에서 풀려나 상소문을 올려 재기를 꿈꾸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은둔하여 시와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
1921년 서화협회(書畵協會) 정회원으로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출품하였으며,
1922년에는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산인탁족도(山人濯足圖)〉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옛 그림들로 임모(臨模)하여 기량을 길렀으며, 특히 산수인물을 잘 그렸다.
그의 화풍은 대체로 중국풍이 짙은 북종(北宗)ㆍ원체적(院體的)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독창적인 화풍은 형성하지 못하였으나, 인물과 산수를 적절히 배치하는 구성력은 뛰어났다.
대표작으로 개인 소장의 후적벽부도( 後赤壁賦圖), 남극노인수성도(南極老人壽星圖), 동파선생입기도(東坡先生笠기圖) 등이 있다.
그의 아들 지성채도 화가이다.
영산전 편액
굵은 획에 예서체로 ‘靈山殿’이라고 쓴 글씨에는 획의 굵기만큼이나 묵직한 무게가 실렸다.
글자의 구성이나 배치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한 듯 ‘靈’자에서는 가운데의 ‘口’자 하나를 빼버려 복잡함을 피했고,
‘山’자는 위로 바짝 올려붙여 굵은 글자 셋이 나란히 놓일 때의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극복했다.
그러면서도 획과 획은 긴밀하게 짜여 엉성한 구석이 전혀 없다.
봉은사 영산전 주련(奉恩寺 靈山殿 柱聯)
靑蓮座上月如生(청련좌상월여생) 푸른 연꽃 자리 위에 둥근 달이 솟은 듯한
三千界主釋迦尊(삼천계주석가존) 삼천세계 주인이신 석가세존 거룩한데
紫紺宮中星若列(자감궁중성약렬) 하늘나라 자감궁에 성군들이벌여서듯
十六大阿羅漢衆(십육대아라한중) 열여섯 분 대아라한 부처님을 시위(侍衛)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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