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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지문(弘智門) 및 탕춘대성(蕩春臺城)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3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4. 3. 20:27

    홍지문(弘智) 및 탕춘대성(蕩春臺城)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3


    이 성은 1719(숙종 45)에 쌓은 것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이다.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 사각지대인 지형에 맞게 두 성 사이를 이어 성벽을 만든 일종의  관문성(關門城) 성격을 지녔다

    성곽 둘레는 약 4km로서, 성 안에 연무장(鍊武場)인 연융대(鍊戎臺)를 만들고 군량창고 등을 갖추었다.

    성벽의 크기가 고른 정방형의 돌을 반듯하게 쌓아 숙종 때 성을 쌓는 기법을 잘 보여 준다

    홍지문은 홍예(虹霓) 위에 정면 3, 측면 2칸 짜리 문루를 지었는데, 대개의 성문처럼 우진각지붕이다.

    그 옆으로 이어진 수문인 오간수대문은 홍예 5칸을 틀어 수구(水口)로 썼다.

    성의 이름은 연산군 때 세검정 동편 탕춘대(지금 세검정초등학교)를 쌓고 연회를 베풀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홍지문은 한북문(漢北門)으로도 불렀다.

    1921년 홍수로 인해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은 무너졌으나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산4번지




    탕춘대성(蕩春臺城)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왜란과 호란 속에서 서울이 함락되며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왕조는 전쟁이 끝난 후

    국방은 물론 유사시에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효종(16491659 재위), 현종(16591674 재위)을 거쳐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수도방위에 더욱 치중하였다.

    숙종은 재위 30(1704) 3월부터 도성 수축공사를 시작하였고 이 공사는 6년 후인 숙종 36(1710)까지 계속되었다.

    도성 수축공사를 끝낸 숙종은 왕 37(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하였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이 탕춘대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이미 숙종 28(1702)에 신완(申琬)이 제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은 숙종 44(1718) 826일부터 축성하기 시작하여 106일까지 40일간 성 전체의 약 반을 축성하고

    일단 중지하였다가 다음해 2월부터 다시 축성하여 약 40일 후에 완성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탕춘대성 전체의 길이는 약 4km였음도 알 수 있다.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탕춘대 터(오늘날 서울세검정초등학교)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는 한편,

    비상시를 대비하여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 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하였다.

    탕춘대성은 축성을 담당했던 관아나 또는 축성역, 축성 방법, 축성 경비 등에 관해서는 일체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성의 축조와 마찬가지로 군문(軍門)에서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현재 홍지문이 복원되어 있고, 상명대학교 북쪽으로 성곽이 남아있다.








    종로구 경계점 표석


    홍지문은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區 경계지점에 있다.








    간수대문(五間水大門)









    홍제천(弘濟川)


    삼각산(三角山) 서쪽 기슭과 북악산 북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홍지동과 홍은동을 지나 백련산 동쪽을 감싸 돌면서 남가좌동에 이르고

    불광천을 합류하여 난지도를 끼고 한강에 유입되는 한강 제1지류이다.

    홍제천 길이는 13.9이고 하폭은 평균 약 50m이다.

    홍제천 위로 내부순환로가 가설되어 한강 이북지역의 교통 소통에 일조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 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모래내,사천(沙川),홍제원내,홍제원천(弘濟院川),성산천(城山川),세검천(洗劍川),홍은천(弘恩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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