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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 국보 제117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4. 10. 20:30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  국보 제117호 -


    보림사(寶林寺)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공포는 다포양식이다.

    대적광전은 지권인(智拳印)을 결한 로자나불을 존으로 봉안한 전각으로

    비로전(毘盧殿) 또는 적광전(寂光殿)이라는 명칭도 사용하고 있다.

    불가에서는 법신(法身)과 보신(報身) 그리고 화신(化身)을 삼신(三身)이라고 하는데,

    법신보신화신의 근본이 되는 몸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가장 청정하고 근본이 되는 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장하는 부처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비로자나는 Vairocana의 음역인데 모든 곳에 두루 비침(遍一切處), 광명이 두루 비침(光明遍照), 두루 비침(遍照)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부처님의 광명이 세상 어느 곳이든 두루 비쳐 중생을 제도하는 권능을 지닌 부처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로 224 (봉덕리)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 국보 제117호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는 철불과 비로자나불은 선종 사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명문이 있어 조성연대와 배경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종 구산(禪宗 九山)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개창되었던 보림사의 철불(鐵佛)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명문을 통해 볼 때 신라 하대의 불상 조성이 국가적으로 엄격히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유지가 사재를 들여 조성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하대 지방 호족의 미감과 자세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그래서인지 이 철불은 유난히 지방 양식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경우의 지방 양식이란 특정한 미술 양식이라는 의미보다는 중앙 양식에서 벗어난,

    그러면서도 대중의 정서에 부합되는 민예적인 친밀감이 느껴지는 양식을 말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팽창된 체구와 가슴의 표현 등은 당당해 보이면서도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 들었고,

    몸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손과 넓은 무릎은 불상의 전체적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불상 가운데 유일하게 몸에 불상의 조성 내력이 적혀 있다.

     

    명문 내용

    當成佛時釋迦如來入滅  後一千八百八年耳此時(당성불시석가여래입멸  후일천팔백팔년이차시) 

    情王卽位第三年也  大中十二年戊寅七月十七日  武州長沙副官金(정왕즉위제삼년야  대중십이년무인칠월십칠일  무주장사부관금)  

    遂宗聞奏情王王八月二十二日 勅下令 口躬弁不覺勞困也(수종문주정왕왕팔월이십이일 칙하영 구궁변불각노곤야)


    불상이 완성된 것은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 1808년 되는 해로, 이때는 정왕이 즉위한 지 3년 되는 해이다.

    대중 12년(858) 무인 7월 17일에 무주 장사의 부관이던 김수종이 불상 만들  것을 왕에게 간청하였는데 

    헌안왕(情王)이 8월 22일에 만들도록 허락하니 힘든 줄도 몰랐다.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보림사 대적광전 주련(寶林寺 大寂光殿 柱聯)


    佛身普放大光明(불신보방대광명)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놓으사

    色相無邊極淸淨(색상무변극청정)  형색과 모양 가이없어 지극히 청정하시네

    如雲充滿一切土(여운충만일체토) 구름이 모든 국토에 충만하듯이

    處處稱揚佛功德(처처칭양불공덕)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시네

    光相所照咸歡喜(광상소조함환희) 광명이 비치는 곳 넘치는 환희여

    衆生有苦悉除滅(중생유고실제멸) 중생은 고통을 씻은듯이 잊는도다.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 있는

    국보 제44호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寶林寺 南.北 三層石塔 및 石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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