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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어있는 마을 은이성지(隱里聖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7. 20. 04:43

    숨어있는 마을 은이성지(隱里聖址)
















    김가항성당(金家巷 聖堂)


    한국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본관은 김해로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1796~1839) 성인과

    모친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충청도 솔뫼(松山)에서 출생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과 가족들은 1827년경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용인으로 피신하여 골배마실에 정착하였다.

    이때 김대건 신부의 나이는 7세로 그의 나이 15세 때 신학생 후보를 찾던

    모방 신부에 의해 장래 조선 교회를 이끌 목자의 재목으로 선택된다.

    이 곳에서 선대의 신앙을 이어받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면서 자신의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한다.

    그 역시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돼 그 해 9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마카오로 유학을 간 신학생 김대건은 1845817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된다.

    그해 10월 해로를 택해 국내에 잠입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어려서 자라던 골배마실을 찾아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귀국 후 첫 사목지를 은이마을로 정한 김 신부는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의 사목을 시작한다.

    이렇게 6개월간의 사목활동을 하시던 중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의 입국로를 준비하던 김대건 신부와 일행은

    순위도에서 포졸에게 184665일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된다.

    이 시기에 조선의 조정 대신들에게 서양 학문을 일깨워 주는 활동을 하며 처형되기 한 달 전에는

    마지막으로 조선 교우들에게 보내는 회유문을 작성하였다.

    그해 9월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군문효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된다.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은 먹뱅이(묵리)에 살던 이민식 빈첸시오와 몇몇 교우들이 몰래 빼내어

    1026일에 미리내에 안장하게 된다. 







    은이성지(隱里聖址) 표석



    은이에서 마지막 공식미사 후 남기신 말씀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 할 용맹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구합시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검은 마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처해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님의 안배하심에 맡기고 주 성모님께 기구하기를 잊지 맙시다.

    다행히 우리가 살아 있게 된다면 또 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서 즐거운 재회(再會)를 합시다.

    끝으로 내 홀로 남으신 불쌍한 어머님을 여러 교우 분들이 잘 돌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천주강생 일천팔백사십육년시월십삼일




    성 김대건안드레아신부님 행적가

    작사 작곡 : 주재용 신부


    1. 십오세 어린소년 안드레아는 모정에 싸인조국 뒤에버리고 멀고먼 이역풍토 만리타국에 십여년 오랜풍상 겪으셨도다

    2. 산설고 물선저곳 마카오에서 오륙년 철학신학 두루배우고 임인년 이월경에 오문올떠나 요동에 당도하니 만주객이라

    3. 변문에 몸숨기고 지내면서도 조정의 사신행렬 지날때마다 그중에 혹시교유 만나질까해 틈틈이 기우기웃 살펴보도다

    4. 우연히 김방지거 만나게되어 첩첩이 쌓인정담 서로 나눌새 오호라 주교신부 치명하시고 그리던 부친까지 순교하셨네

    5. 열심한 안드레아 이말듣고서 영신엔 기꺼하며 감사하시나 모친의 유리걸식 생각을하니 육정엔 뜨건눈물 옷깃적신다

    6. 흉흉한 조국땅에 혼자가고저 동편을 바라보니 망망하구나 올올이 찢은편지 노를비비어 허리에 보배로이 받아지녔다

    7. 압록강 깊은물은 앞길을막고 삼엄한 순라꾼은 사방살피나 민첩한 안드레아 소틈에끼어 변문을 썩나서니 고국이로다

     8. 밤새껏 길걸으니 기갈심하고 혹독한 추위겹쳐 사경이건만 주막집 쫓겨나와 잘데없어서 깊은산 찬눈위에 몸을 던진다

    9. 혼몽중 바삐가란 소리듣고서 이상한 저그림자 뒤를따르며 조국땅 등지고서 되돌아서는 비장한 그마음이 오죽했을까

        10. 매스뜰 이신부께 사실아뢰고 몽고에 머물면서 공부하던중 훈춘에 다녀오란 분부받들고 새길을 개척하려 그곳가시네

     11. 십이월 중순경에 길을떠나니 쌓이고 덮힌눈이 발길막으며 만주벌 찬바람은 살을에이고 백두산 눈보라는 뼈를 녹인다

    12. 경원서 밀사교유 잠간만난후 눈물로 이별하며 발길돌리니 사십일 천신만고 수포가되고 그토록 애쓴일이 허사되도다

    13. 몽고에 되돌아가 부제품받고 세번째 조국땅을 찾아나설제 주교님 강복받고 변문을떠나 십여일 고생끝에 서울에오다

    14. 십여년 그리웁던 모친안뵙고 상해를 목적지로 배를띄우니 광풍에 놀란물결 배를덮치나 성모님 보호입어 생명구했네

    15. 상해의 김가항서 탁덕승품코 고주교 안신부를 함께모시고 강경포 고국땅에 상륙하시니 회로의 그고생은 더욱심했네

    16. 이신부 영접차로 황해도가서 뜻밖에 체포되어 포청몸되니 귀국후 채일년에 옥중생활은 진실로 애석하고 원통하도다

    17. 금부에 이송되어 사십공초에 죽기로 결안내니 영광이로다 새남터 형장에서 생명바치고 안성군 미리내에 안장되도다

    18. 천구백 이십오년 칠월오일에 칠십구 복자함께 시복되시고 천구백 팔십사년 오월육일에 백삼위 모두함께 시성되도다 




    한국 순교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위대한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의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 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당신들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 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 해 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 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 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2)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을 충실히 따르고 사랑하는 사제들을 굽어 살피시고,

    그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증언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믿음을 따르고 지켜가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봉사를 본받고 실천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가난을 받아들여 자유롭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겸손을 배워 스스로 낮추게 하소서.

    사제들이 언제 어디서나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하여 하느님 백성의 길잡이가 되고 일치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사제들이 모범이 되어 성실한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소서. 아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은이성지(隱里聖址)


    은이 마을은,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모여 살게 되면서 시작된 교우 촌으로서,

    은이란 글자 그대로 숨어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은이 성지는 1836113, 프랑스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모방(Maubant. )신부가, 그 해 4월경 이곳을 방문하여

    당시 15세인 소년 김대건(金大建, 1821-1846)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한 곳이다.

    성지내 김대건 기념관 앞 옛 은이공소지(隱里公所址)로 전해지는 곳에 소년 김대건이 세례받는 형상의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김대건(안드레아), 711일 서울 모방 신부 댁에 도착 이미 선발된 동료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등과 함께 라틴어를 배우다가,

    123일 중국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의 극동 대표부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8년 뒤인 184412월 초에 최양업과 함께 만주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았으며,

    1845817일에는 상해(上海) 인근의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

    3대 조선 교구장인 페레올(Ferreol, )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는 18451012, 교구장 고()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를 모시고 강경 황산을 통해 귀국하여,

    11월 경부터 1846년 부활대축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은이 공소에서 기거하면서 서울과 용인 일대 교우들을 사목하였다.

    그러므로 은이 공소는 사실상 김대건 신부의 본당 역할을 한 곳이며, 그의 땀과 신앙이 배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성소(聖召)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던 곳이 은이(隱里)’이다.

    즉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산넘어 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천주교회 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고() 주교의 명에 따라, 최양업 부제와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위한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1846413일 은이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길을 떠나며,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맹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구합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검은 마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처해있는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님의 안배하심에 맡기고, 주 성모님께 기구하기를 잊지 맙시다.

    다행히 우리가 살아 있게 된다면, 또 다시 내 불쌍한 어머님을 여러 교우니들이 잘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마지막 인사 겸 부탁을 하고 길을 떠났다.

    김대건 신부는 184665일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3개월간 40여 차례의 혹독한 고초를 겪은 후, 같은 해 916, 그 학덕(學德). 그 웅지(雄志)를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채,

    26세의 젊은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으로 장렬히 순교하였다.

    그가 순교한 후 40여일만에, 이민식(빈체시오)과 여러 교우들이 감시의 눈을 피해,

    김신부의 시신을 몰래 찾아내어, 낮에는 산에 숨고 밤으로 운반하여 미리내 성지에 안장하였다.

    이곳에서 미리내 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험한 고개 셋이 있는데,

    이 고개는 김대건 신부 생전에는 그가 걸어서 넘나들던 사목활동 행로였고, 순교 후에는 그의 유해가 옮겨진 경로가 되었다.

    옛부터 교우들은 이 고개를, 신덕 고개(은이 고개), 망덕 고개(해실이 고개), 애덕 고개(오두재 고개)라고 부르며,

    지금껏 도보순례를 하면서 그의 고귀한 순교 신앙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1925725일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56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성되었다.


    201691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70주년에 즈음하여 새 성전을 봉헌하며

    은이성지위원회, 은이 김대건신부 현양위원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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