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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김대건 신부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 골배마실성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7. 19. 04:30

    성 김대건 신부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 골배마실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님(성장지) 골배마실성지





    골배마실성지 출입문 비밀번호 8899


    골배마실성지는 은이성지의 동쪽 갈미봉 아래에 위치한 양지파인리조트(양지 유스호스텔)

    양지파인골프클럽 남코스 2번홀, 3번홀 사이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평소에는 출입문이 잠겨 있으므로 사전에 은이성지 사무실(031-338-1702)에 전화연락을 하면

    열쇠 비밀번호를 친절히 안내해 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성장지

    골배마실성지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 데 없고...

    성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회유문에서




    김대건신부 피난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생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것은 1821821, 지금의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인 솔뫼(松山)에서

    부친 김제준(金濟俊, 1796~1839, 이냐시오) 성인과 모친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 신부의 집안에 신앙이 스며든 것은 그의 증조부 김진후(金震厚, 1739~1814, 비오)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1791*진산 사건(珍山事件)으로 그는 옥에 갇히고 1801년 신유박해 때는 유배를 가기도 하였으며,

    1805년 다시 붙잡혀 결국 10년의 옥고 끝에 1814년 순교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 김대건 신부가 탄생하고 재복(再福)이라는 아명(兒名, 어릴 때 이름)으로 7살까지 솔뫼에서 지내다

    김 신부의 조부인 김택현(金澤鉉, 宗元)이 가세가 기울고 더 이상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워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바로 이곳 경기도 용인 땅으로 삶의 터를 옮겼다.

    당시 그의 가족이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군 곳은 골배마실이 아니라

    서쪽 산너머에 있는 '한덕골'(,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4)였다.

    한덕골로 내려오기 전에 이보다 더 험준한 인근의 광파리골에 살았고,

    그 후 한덕골에서 다시 인접한 굴암(구람)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김제준은 그 후 가족들 을 이끌고1835년 무렵에 한덕골 일대에서 골배마실로 이주하였다.

    선대의 신앙을 이어받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모방(Maubant, 羅伯多錄, , 1803~1839, 베드로) 신부로부터

    세례(洗禮)와 견진(堅振)을 받고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면서 자신의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하였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18364월 이웃에 있는 은이공소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83612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다.

    9년 만이 184510월 국내에 잠입한 김 신부는 비로소 자신이 자라던 골배마실을 찾아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감격의 재회를 하였다.

    귀국 후 페레올 주교의 배려로 첫 사목지를 은이 마을로 정한 김 신부는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의 사목을 시작하였지만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모친 역시 귀국 후 잠시 얼굴을 대했을 뿐,

    김 신부는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만인 18469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장렬한 순교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이때 김대건 신부의 나이는 26세였다.

    그 후 192575일 교황 비오 11세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79명의 순교자를 시복하였고,

    19845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 진산 사건(珍山事件)

    1791년 신해박해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전라도 진산(珍山, 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서

    천주교인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와 권상연 야고보(權尙然, 1751~1791)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워 버린 폐제분주(廢祭焚主)’사건을 말한다.

     1790년 말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는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윤지충은 17915() 그믐 모친 권씨(權氏)의 상()을 당한 후

    그해 8() 그믐에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었고,

    윤지충의 외종사촌 권상연도 죽은 고모의 신주를 불태워 윤지충과 보조를 같이 하였다.

    이 사건을 충효의 유교 이념을 국시로 하는 조선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였다.

     사람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사실로 1791128(1113) 처형 당하였다.










    성지순례 안내문


    골배마실 성지를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성지의 관리와 보존을 위한 조치에 대해 양해바랍니다.

    성지에 입장하여 순례를 하고자 하시는 분은 은이성지에 연락하시어 열쇠 비밀번호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이성지 : 031-338-1702 (사무실)

    은이성지 미사시간 : 매일(~) 11, *월요일은 제외

    성지후원회원을 위한 미사 : 매주 토요일 11




    부탁의 말씀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성소요람지요, 순교자 가족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이 곳을 찾은 교우라면

    무엇보다도 그분들이 지니셨던 하느님께 대한 숭고한 신앙적 열정을 마음에 되새기며 느끼는 시간을 갖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옛 선조들이 꽃 피웠던 신앙의 얼을 되살려 교회의 성소자들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을 약속하는 추억의 장소로 간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유흥을 위한 오락이나 취사 및 음주 등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지 않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은이(골배마실) 성지위원회 은이(골배마실) 성지전담 신부




    성 김대건 신부와 골배마실 성지


    김대건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부친 김제준(金濟俊, 1796~1839) 이냐시오 성인과

    모친 고() 우르술라(1798-1864)의 장남으로 충청도 솔뫼에서 출생하였다

    김대건의 조부 김택현(金澤鉉, 宗元)과 가족들은 1827년경 박해를 피해 용인으로 피신하여 골배마실(한덕동 경유)에 정착하였다.

    이때 소년 김대건의 나이 7세였다골배마실은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이 많은 지역이라서 뱀 마을, 즉 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의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골배마실'이라 불려왔다.

    김대건의 가족이 골배마실로 이주해 와 살던 때까지도 소년 김대건은 세례를 받지 못했다.

    곧 조선 땅에 오실 목자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교리를 배워 익히며,

    조선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한 몸을 봉헌하고자 포부를 키우며 살던 장소이고,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임자이신 하느님께 향한 열정을 불사르던 곳이 골배마실 성지이다.

    그러던 중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모방 베드로(Maubant, 羅伯多錄, , 1803~1839) 신부로부터

    1836년 봄에 15세 나이로 안드레아라는 본명으로 산 넘어 은이공소(隱里聖地)에서 세례성사를 받게 된다.

    또한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이 관헌에게 체포된 곳이며,

    사제가 되어 오신 김대건 신부가 어머니와 첫 상봉한 장소요, 미리내로 향하던 신부님의 유해가

    어머니 고 우르술라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현재 입구에 성지 이름을 새긴 돌은 그 옛날부터 집터 밑 땅 속 깊이 잠자던 것으로, 발굴하여 글을 새겨 놓았다.

    또한 성지 내에는 옛 고목나무(고욤나무) 몇 그루가 아직도 남아있다.

    생가터 비 뒷면에는 상세하게 기록된 신부님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다.


    천주교 은이. 골배마실 성지위원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양지파인리조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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