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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수원성지(북수동성당) 돌형구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7. 4. 05:25

    천주교 수원성지(북수동성당) 돌형구




    수원 최초의 성당, 북수동성당(北水洞聖堂)

     

    수원 화성의 중심부인 장안문 인근에 있는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은 수원 시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본당으로

    과거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치명한 중영(中營, 摠理營)인 포도청 터와

    그리고 수원 최대의 부잣집들이 모였던 팔부자의 집터와 일부 겹쳐지는 공간으로

    2000년 천주교 수원성지로 선포한 역사와 종교의 숨결이 깃든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북수동성당은 1890년 왕림성당의 수원공소로 출발해 1904년부터는 남수리 황학정 정자와

    그 대지 800평을 사들여 공소 강당과 화양학교를 개설하여, 남녀 아동 200여 명을 교육하다가

    1906년 북수리(현 북수동 성당 자리)세칭 팔부자 집이라 불리운 기와집 두 채와 행랑채를 매수하여

    본당 창설 기지를 삼아 19231123일 수원성당 본당으로 독립한다.
    19321113일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물인 성당을 건립하였다.

    옛 성당은 1978년 철거되고 19794월 현재의 성당이 건립되었다.
    1930년 북수동성당 4대 주임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심응영-폴리(Polly, 沈應榮, 1884~1950, 데시데라토) 신부가

    부임하고 나서부터 재임 18년간 수원의 천주교회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6.25 때 몸을 피하지 않고 의연히 성당 안에서 기도하던 중 인민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였다.
    심 신부는 수원 화성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32년 파리외방전교회의 원조와

    그의 모친이 삯바느질로 모아서 보내 준 돈으로 기와집 성당을 헐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 성당(75)을 신축하였는데 이는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물이다.
    1934년 학술 강습회 소화학원을 개설하였고, 해방 후인 1946년에는 소화국민학교를 인가받아

    성당안에 개교하였는데 수원시민들이 가장 보내고 싶은 사립학교였다.
    1976년 구식의 석조 사제관을 헐고 다목적 사제관을 다시 건립하고, 197945일에는 40년 묵은

    옛 고딕 성당을 철거하고 연건평 236평의 주교관(主敎冠) 모양으로 된 현재의 새 성당을 준공 축성하였다.
    현재 성지 마당에는 정약용이 설계한 봉화대 보양의 묵주 알고 버드나무 형태로 성곽 둘레를 축소한

    로사리오의 화단이 조성되어 우리 꽃, 야생화 1천여 종이 심어진 방화수주길을 이루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북수동) 천주교 북수동성당






    수원성지 돌형구(刑具) 


    이 돌(가로 61cm×세로 42cm×27cm)는 수원화성 근교 개인집 철거 때 발견되었는데,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 당시 수원화성에서 천주교인들을 심문할 때 사용되었다가

    그 이후 개인집의 모퉁이 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구멍이 크게 뚫린 앞 쪽에 천주교인들의 목을 놓고 밧줄을 목에 건 다음,

    구멍이 작게 뚫린 뒷쪽에서 밧줄을 잡아 당겨 목을 조이는 형구이다.




    북수동성당 미사시간(전화 031-246-8844~5) 


    주일 06:00, 09:00(어린이, 청소년), 11:00(교중), 17:00(성지), 22:00(직장인)

    평일: 월 11:00  화,수,목 11:00, 19:30  금 11:00, 토 11:0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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