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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 등록문화재 제59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8. 27. 04:00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永同 老斤里 雙窟다리) - 등록문화재 제59


    1934년 건립한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사건현장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507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학살 당시 탄흔과 파편 등으로 당시의 현장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의 장으로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라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아픈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의 소중한 마이너스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3630, 등록문화재 제59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쌍굴 교작의 제원 : 길이 24.5m, 높이 12.25m(내부 10.35m), 6.75m, 두께 1.9m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서울기점 225)


















    노근리사건희생자영위(老斤里事件犧牲者靈位) - 쌍굴다리 뒤편



    노근리사건 개요

    발생시기 : 1950. 7. 25 ~ 7. 29 (5일간)

    발생장소 :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철로 일대(서울기점 225지점)

    피해인원(추정) : 250~ 300

     

    노근리사건 경위

    1950. 7. 23 정오, 영동읍 주곡리마을 소개명령(영동읍 주곡리 주민 임계리로 피난)

    1950. 7. 25 저녁, 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임계리, 주곡리,타지역주민) 500600명을 미군이 남쪽 (후방)으로 피난 유도

    1950. 7. 25 야간, 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미군에 의해 피난민 노숙

    1950. 7. 26 정오경, 군도21호선(당시 4번국도)을 이용 김천방면으로 피난, 서송원리 부근에서 미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철로로 행로 변경

    1950. 7. 26 정오경, 미군 비행기 폭격 및 기총 소사로 철로 위 피난민 다수 사망

    1950. 7. 26 오후 ~ 7. 29 오전,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에 대해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피난민 사망

                                               (사격은 미군들이 인민군에게 밀려 이곳을 철수한 1950. 7. 29 오전까지 계속)  

     

    1960.10. 정은용씨 미국정부에서 서울에 개설한 소청사무소에 손해배상청구 기간이 지나 배상할 수 없다는 답신

    1999. 9. 30. 미국 A.P통신 6.25당시 노근리사건 보도(제목 노근리 다리’)

    1999.10. 1.  클린턴 미대통령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노근리사건 언급 및 철저한 진상규명 조사 지시

                      (노근리사건 대책단장 임명 : 칼데라 미육군성장관)

    1999.10. 2. 노근리사건 정확한 진상규명과 상응한 조치지시(김대중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 시)

    1999.10.13. 미간 공동조사방안에 대해 미국 측과의 원칙적인 합의(미 공동협의체 구성운영(BCG), 정보공유 및 조사결과 공동평가)

    1999.11. 4. 미 기관총 사수 에드워드 데일리와 피해자 면담(장소: 대전 롯데호텔 3층 로비, 취재 : NBC(미국), MBC(한국))

    2000. 7. 26. 노근리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2001. 1. 12. 노근리사건 한미 공동발표(한국: 노근리 주변에서 피난민 향해 사격하였으나 사격. 명령 하달 여부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함,

                     미국: 희생자에 대한 유감 표명과 추모비 및 추모장학 기금 설립 (추모비 100만 달러, 추모장학금 75만 달러)표명)

    2002.  2. 6. 노근리사건 재조사 촉구 성명서 발표

    2002.11. 7. 노근리사건 특별법 국회 청원 접수(청원인: 노근리사건피해자대책위원장 정은용외66)

    2003. 6. 13. 노근리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국회제출(심규철의원 (김홍신외 33명 찬성서명))

    2003. 6. 30. 노근리 쌍굴다리 등록문화재 제59호 지정

    2004. 3.  5. 노근리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 특별법 공포

    2004. 9. 20.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 현판식

    2006. 3.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보고서 발행

    2007. 3. 22. 노근리사건 역사공원 기본계획안 심의 결정

    2007. 7. 27~10. 노근리 유해발굴(박선주 교수팀)

    2009. 6. 23. 희생자 합동묘역 준공식(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산59, 기관총 쏘던 곳 근처)

    2011.10.      노근리평화공원 개관



    노근리양민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한국전쟁 중 1950725~ 729일 사이에,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민간인 피난민 속에 북괴군들이 잠입했다고 오인하여

    폭격과 기관총 발사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인 정은용, 정구도, 양해찬, 정구호, 서정구씨 등으로

    1994년에 구성된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 정은용)에서는 사망자 135, 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이었다.

    미군 축은 이 사건을 부정했으나 19999월 미국연합통신이 발굴한 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20011월 사건이 공식 인정되었고,

    2004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등록문화재 제59호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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