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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장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 홍보관
    국내 나들이/홍보관(弘報館) 2019. 9. 7. 21:30

    내장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 홍보관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탐방안내소는 자연과 국립공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각종 정보를 과학적으로 전달하며, '선진화된 국립공원' 서비스를 위해 19987월에 개관하였다.

    내장산의 경관, 명소, 자연생태계 등 기본적 탐방정보 외에도

    내장산지역 고유의 향토문화와 생활철학을 보다 깊이있게 전해줄 모든 자료가 비치되어 있다.

    탐방안내소는 종합전시실, 정보검색시스템, 표본실, 영상실, 자료실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자료를 통해

    내장산의 동식물 서식지와 생태계, 뛰어난 경관과 명소 등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또한 내장산의 대표적인 자연자원관 공원의 문화.역사적 자료를 영상으로 제작 상영하고 있으며,

    탐방객들의 필요한 정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국립공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07 (내장동)

     




    내장저수지(內藏貯水池)


    정읍천의 지류인 내장천 상류에 조성되어 있으며, 주요 농업용수원이 된다.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하여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저수지를 끼고 지방도로가 지난다. 낚시터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수지에는 나무데크로 호수산책로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自然 그대로






    우화정(羽化)

     

    내장산 진입로에 있는 우화정은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昇天)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우화정(羽化亭)'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482년 무렵 내장산성(內藏山城)이 있었던 곳으로 승군(僧軍)과 왜적(倭敵)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장소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의 시설은 남아 있지 않고 연못 가운데 자연석과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지고

    흰색기둥에 파란 지붕을 올린 정자 형태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호남의 금강, 내장산국립공원



    내장산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


    단풍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인자는 온도와 햇빛, 그리고 수분의 공급이다.

    내장산은 남부 내륙지방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가을 일교차가 크다.

    그리고 단풍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내장산에는 11종의 단풍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설악산은 6, 지리산과 오대산은 4종이다.

    특히 가을 일조시간이 길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나무가 햇빛을 많이 받는다.

    일조간이 길수록 나무는 광합성량이 많아지고 잎 속의 당분도 늘어난다.

    남부에 위치하여 가장 늦게 절정에 이르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식물의 가을 단풍이 드는 이유


    날씨가 추워지면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이 만들어지면서 잎의 양분(당분)이 줄기로 이동하지 못해 엽록소가 파괴 된다.

    대신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카로틴과 크산토필 같은 색소가 드러나 나뭇잎이 노랗게 보이게 되거나

    혹은 안토시아닌 이라는 색소가 생성되어 나뭇잎의 색이 붉게 보이게 된다.


    단풍나무과가 아닌 나무들의 단풍 색


    붉은색 - 붉나무, 벚나무, 개옻나무 등

    노란색 - 생강나무, 은행나무, 피나무 등

     


















    석란정지(石蘭亭地)


    조선 말기 유림들이 모여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서보단(誓報壇)이 있던 곳으로 석란이 많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정자나 석란은 없고 석란정이란 글씨만 남아 있다.

    이 글씨는 조선시대 여류 묵객 몽연당 김진만의 글씨이며 이 정자를 보존하기 위한 석란계원 36명의 명단이 함께 새겨져 있다.

     



    내장산 용굴(內藏山 龍窟)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굴로 불리게 되었으며, 너비 8.5m, 길이 8m, 높이 2~2.5m의 크기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 영정을 이안시켜

    1년간 보전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소이다.




    1592년 조선왕조실록 내장산 이안(移安)


    임진왜란 당시 정읍 선비들 안의(安義, 1529~1596)와 손홍록(孫弘祿, 1537~1610)에 의하여

    경기전(慶基殿, 전북 전주시 소재) 내 전주사고에 보관되던 조선초기 200여년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이 내장산의 용굴암(龍窟庵)과 은적암(隱寂庵), 비래암(飛來庵) 등지로 옮겨짐으로써

    전란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 두 선비는 당시의 사찰 영은사 주지 승병장 희묵대사(希黙大師, ?~1597)와 함께

    정읍에서 383일 동안 수직하여 지킨 후 이들과 함께 충청도 아산까지 실록과 어진을 이안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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