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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하는 정원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9. 12. 11. 04:00

    생각하는 정원


    설립자 성범영 원장이 1968년 황무지를 개간하여 밀감, 정원수, 양돈장, 관엽 식물, 분재 재배를 시작으로

    청원농장을 조성하였으며, 1992730일에 분재예술원으로 개원하였다.

    개원 이후 각국의 정상과 대통령 등이 방문하여 분재예술원은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6324일 분재예술원은 문화관광부에 박물관(식물원) 등록을 하였다.

    수백여점의 분재가 오름과 물을 모티브로 한 자연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분재예술원 개원 15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나고,

    세계적인 정원으로 나아가고자 '생각하는 정원'으로 정원의 이름을 정식으로 바꾸었다.

    생각하는 정원의 역사는 1963년 성범영 원장이 제주에 첫발을 디디고 돌투성이 불모의 땅을 일구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이다.

    황량한 불모지에 꽃피운 한 농부의 혼불이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실제 세계명사들이 가장 많이 다녀간 명소이다.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문과 후진타오 현 주석, 북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 일본 나까소네 총리대신 등

    외교사절과 국내외명사들의 방문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전시장은 제주를 상징하는 기생화산 오름의 모습을 본 따 공간을 구획하였다.

    총면적 33,00030~250년 수령의 희귀수목 100여 종과 정교하게 작품화된 2,000여점의 분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제주 화산석으로 쌓은 돌담과 돌탑, 정원 내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제주 최대의 인공폭포

     하나의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커다란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 등의 공원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675 (저지리)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












    한국우공(韓國愚公)


    중국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이라는 사람이 산을 옮기둣이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고

    굳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여

    중국의 지도자와 언론에서 성범영 원장을 한국의 우공이라고 칭하였다.




    人生求索 成就事業 范典造苑 永恒之美(인생구색 성취사업 범전조원 영항지미)

    인생탐구로 사업을 성취한 이, 모범적인 정원의 영원한 아름다움

     

    20155월 성범영 선생이 베이징 방문 때 걸출한 인사가 분재를 복되게 하다.

    우웨이산(吳爲山) 중국미술관 관장이 성범영 원장의 이름을 따서 인성범영(人成范永)으로 사행시를 지어 서예 작품을 써 주었다.








    평화를 위한 노래(平和訟, 평화송)


    한중수교 20주년(2012)을 기념하여 중국 중일한경제발전협의회에서는

    황무지를 최고의 정원으로 가꾸신 성범영 선생의 우공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중한 양국민의 친선교류를 위하여 오랫동안 수고를 마다 않은 성범영 선생 내외분의 노고를 기리기 위하여

    환경보호소재인 진귀재조석으로 제작한 조각상을 기증합니다.

    협찬 : 중화분그룹, 조각 : 줘터, 기증일 : 2012917


























    이목시인 여민해락(以木施仁 與民偕樂)


    나무로 어짊을 베풀어 백성들과 함께 그것을 즐기다.’라는 뜻으로 이는 나무사랑이 인간사랑으로 이어졌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새마을 運動自然保護


    1977129일 대통령 박정희 방문 기념



    김용순 북한 노동당 비서,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방문기념




    장쩌민(江澤民, 강택민) 중국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90~2005 재임) 방문기념




    후진타오(胡錦濤, 호금도) 중국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2004~2013 재임) 방문기념





    농부 성범영(農夫 成范永)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은 경기도 용인 수지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한 성범영 원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자금을 낼 수 없어 고등학교 2학년 중퇴를 하고 군대에 갔다.

    나무를 기르면서 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가 군대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러

    1963년 처음으로 화산섬 제주를 찾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서울에서 와이셔츠 가게와 공장을 운영하며, 수십 차례 제주를 다녀간 후

    전 재산을 털어 제주 중산간 오지 중 한 곳인 한경면 저지리의 12천평을 사들였다.

    1968년부터는 전기도 수도도 없었던 돌투성이 황무지를 개간하며,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나무를 길러 보고 싶다는 희망과 계획을 실행에 옮겨 나가기 시작하였다.

    현지 주민들조차 저 두루외 낭이 밥 먹여주나’ (제주도 사투리로 미친놈 나무가 밥 먹여주나’)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나무에 미쳐 있었고,

    그렇게 돌을 캐고 나무를 심고 가꾸며 돌담을 쌓는데 온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으로 몇 차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의 시작과 더불어 마을에서 들려오는 새마을 운동 노래 소리에 힘입어 다시 의지를 다지게 된다.

    결국 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공사를 진행하던 중 10여 차례 부상을 입고, 수차례의 수술도 받았다.

    이렇게 설계도면도 없이 한 농부가 만든 정원이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괸 것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었다.

    그로 인해 관광객의 숫자도 부쩍 증가하여 정상화 궤도를 걷는가 싶었지만,

    1997년 한국에 몰아친 IMF 외환위기의 태풍은 이 정원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경영상의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경매에 부쳐지는 수모도 겪게 되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경매일이 코앞에 닥친 순간에도 성범영 원장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돌담을 쌓고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그는 열정을 다하여 천신만고 끝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각하는 정원이 출범한지 반세기가 지나면서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의 필수 방문지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전문가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중국 지도부에서는 한국 성범영 원장의 불굴의 정신을 배워 오라고 당 간부들에게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제 이 정도면 성공했고, 완성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성범영 원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은 꿈꾸던 것의 반 정도밖에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여전히 쉼 없이 아름답고 고귀한 정신이 깃든 세계 최고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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