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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소문 순교성지 옛 순교자현양탑(殉敎者顯揚塔) - 중림동 약현성당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0. 3. 13. 04:30

    서소문 순교성지 옛 순교자현양탑(殉敎者顯揚塔) - 중림동 약현성당


    서소문 순교성지에 대한 관심은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사업 중 시성식(諡聖式)을 준비하면서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200주년을 맞아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중 시성될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의 성인이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순교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성지 확보는 고사하고 순교성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고증(考證)조차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는 서소문 순교성지 조성사업을 최우선으로 시행할 것을 계획하고

    서울대교구 가톨릭실업인회에서 기금 지원으로 19841222일 임송자(리타) 작가가 제작한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함으로써 서소문 성지 조성사업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진 곳이 국유지인 서소문 공원 안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순례객을 위한 아무런 편의 시설도 갖추지 못했고, 안내 체계 역시 미흡하여 교우들의 방문이 어려웠으며,

    서소문 공원을 찾는 일반인들의 몰이해로 인해 순교성지로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또다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순교자 현양탑의 관리를 맡게 된 약현 본당 교우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미약하나마 현양탑에 관심을 기울여

    서소문 공원이라는 대중적인 공간에서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고

    지역 주민들에게 현양탑의 가치를 인식시키고자 자주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탑 주위 공원 지하차고를 건설하면서 받은 충격과 경의선 열차의 빈번한 왕래로 인한 소음이 심한 까닭에

    순례지로서의 품격은 물론 현양탑 자체의 보존에도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양탑 자체가 훼손 되어 기단의 돌 들이 떨어졌고

    탑을 이루는 돌들의 접착 상태가 불량하여 탑 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문제까지 발생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1997년 서소문 공원이 새로 단장되는 것을 계기로 첫 번째 순교자 현양탑은

    약현성당 내 기도 동산으로 옮기고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의 건립을 추진하게 됩니다.

     













    약현성당 기도동산




    서소문순교성지(西小門殉敎聖地)


    우리 겨레는 하느님을 찾아 스스로 믿음을 일으키고 실천하였다.

    천주교회가 이땅에 세워진 1784년부터 100년이 넘도록 천주교 신앙은 참혹한 탄압을 받았다.

    이런 박해를 겪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맏음과 겨레의 구원을 위하여 10,000명이 넘는 교우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서소문밖 네거리로 불리던 이곳은 1801년 이래로 100명이 넘는 교우들이 순교한 곳으로서 한국에서 가장 큰 순교성지이다.

    더우기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 마흔 네분이 198456일 성인으로 선포됨에 따라

    이곳은 한결 빛나는 영광의 땅이 되었으며 성인을 낳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으로서 또 다른 성인을 낳을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에서는 새로 태어난 순교 성인들을 받들어 기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창설 200돌을 기념하면서 우리 순교선열들의 뜨거운 믿음과 거룩한 얼을 본받아

    길이 이어 나가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여기 이 돌을 세운다.


    198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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