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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세리성지성당 순교자 묘지(The Cemetery of the Martyrs)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0. 4. 22. 04:30

    공세리성지성당 순교자 묘지(The Cemetery of the Martyrs)


    이곳은 천주교를 박해하던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1873년 병인박해가 끝날 때까지

    단지 천주(하느님)을 믿고 공경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으신 공세리 지역의 순교자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아산지역의 첫 순교자는 18253월에 체포되어 해미에 투옥되었다가

    문초와 형벌을 받고 석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한 하 바르바라를 시작으로

    특히 병인박해 때 걸매리 출신 박씨 일가는 물론 박홍갑, 오인악, 박제환(베드로) 등은

    당시 불과 18세의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영광스런 순교의 길을 택하였다.

    고귀한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면서까지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던 이곳에 모셔진

    순교자들의 삶과 얼, 정신을 우리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평생 천주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다."

    (순교자 박원서 마르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공세리) 공세리성지성당

     



    순교자묘지와 32위순교자현양비






    박씨 순교자 삼형제


    박의서(사바, 1808~~1867). 원서(마르코, 1817~1867), 익서(1823~1867)는 삼형제라

    의서는 본래 수계(守戒)가 착실하여 회장으로 살며 동네 교우들에게 이익을 많이 받게 하였으며,

    익서도 좋은 사람으로 지내고, 원서는 본디 태중교우로되 마음이 우람(愚濫)하기로 수계를 잘못하고 노름도 약간하고

    서털구털 지내므로 그 형님이 항상 걱정으로 살다가 병인(丙寅) 풍파를 당하여 삼형제 함께 잡혀 수원으로 올라가며 원서 말하되

    "내 평생에 천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더니, 오늘 천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하며 즐거워 장차(將差)더러 말하되

    "나를 이번에 올려 가거든 졸연(猝然)치 말고 바로 죽여 주면 우리 주모(主母)께로 가서 살겠다." 하며

    그 형님과 아우를 보고 권면하거늘 의서 그 아우의 그 전 일을 생각하고 마음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 마음의 입을 떼고 살 생각이 있더니 동생의 모양을 보고 마음을 깨달아 자기도 죽기로써

    아우를 도리의 말로 풀어 이르되 "동생 들어보소. 우리 삼형제 함께 올라가 위주(爲主) 치명하자." 하고

    조금도 변함없이 삼형제 수원으로 올라가니 영장(營將)이 문() () "너 천주학을 하느냐?" 하니 과연 "하나이다" 하더라

    그때는 "한다"하면 문초 없이 내어 죽이고, "않노라"하면 살리는 때라 두말없이 내어 바로 조사치명하니

    나이는 의서가 육십세요, 원서는 오십일세요, 익서는 사십오세라.

    때는 강생후 일천 팔백 육십 칠년 정묘 삼월이더라.삼 형제 잡아 주기는 유다스 김영진이가 잡아 주었느니라

    명인치명사적 11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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