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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그때 그자리~~, 서울농대 민주열사 김상진(金相眞)
    일상생활속에서/사람사는 현장 2021. 6. 2. 19:0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103-2

    구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수원캠퍼스) 

     

     

    김상진 민주열사가 자결한 곳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라면,

    이 보잘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여기는 1975년 4월 11일 김상진 열사가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의거한 곳입니다.

    2001년 5월 20일 김상진기념사업회

     

     

     

    1975년 그때 그 자리~

    서울농대 민주열사 김상진

     

    김상진 열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68학번으로,

    1975년 4월 11일 바로 이 자리에서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에게 준엄한 경고의 내용을 담은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 자결을 감행했던 민주열사입니다.

     

    1975년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공산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구실로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라는 것을 발동하여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가두고 고문과 폭행을 일삼던 때입니다.

     

    그해 3월 언론자유를 외치던 동아일보 기자 18명이 해고되어 길바닥에 내몰렸고,

    4월 8일에는 고려대학교에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어 교정에 군대가 진주했으며,

    9일에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을 사형 판결 하루 만에 처형하는

    사상 초유의 사법살인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학생회장 김상진은 이 암울한 시국을 보며 몹시 분노하고 고뇌했습니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 잔디밭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국성토대회가 열렸고

    이 집회에 세 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은 직접 작성한 ‘양심선언문’을 읽는 도중

    미리 준비했던 20cm 과도를 품 안에서 꺼내 자결을 감행했습니다.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김상진의 주검은 사망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탈취되어

    장례식도 없이, 가족의 동의도 없이 서둘러 화장되었습니다.

    이 사건 한 달 후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학생 천 여명이 ”김상진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서 수많은 학생이 구속, 제명되었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기까지 계속 학생 시위의 촉발점이 되었다.

     

    김상진의 양심선언과 할복자결은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직접 쓴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이나 ‘양심선언문’에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단법인 김상진기념사업회

     

     

     

    김상진(金相眞) 열사 약력


    1949년 11월 16일 서울 출생.
    1968년 2월 보성고등학교 졸업.
    1968년 3월 서울농대 축산과 입학
                    당시 이념써클로 불리던 한얼 생활을 하며 많은 양의 독서로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임
    1970년 군입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분신
    1973년 군제대
    1974년 2학기 복학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해 민주광고가 연일 게재되면서 반독재투쟁의 열기가 고조됨.

              서울의 각 대학들 시위를 벌이기 시작,

              서울농대 3월 28일 제1차 비상총회를 시작으로 학내시위 본격화,

              김상진, 축산과 복학생들과 별도의 모임을 갖고 현사태 대처방안 논의.

              이때 후배에게 유신체제의 허구성,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이 경직된 사회는 젊은이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말함.
    1975년 4월 4일 제2차 농대 비상총회, 300여명 가두시위
    1975년 4월 8일 긴급조치 7호로 고려대학교에 휴교령
    1975년 4월 9일 인혁당관련자 8명에 대해 판결 하룻만에 사형집행
    1975년 4월 11일 농대 교정에서 유신헌법과 독재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 자결.

              수원 도립병원에서 서울대 의대 이송도중 절명(늦은 8시 55분)
              벽제화장터에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됨
              며칠후 CBS에서 열사의 육성녹음 방송. 명동성당 추모미사에서 육성녹음 방송.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추모식 개최,

              훗날 이 사건은 학생운동사에서"5·22사건"으로불리고 있다.
    1980년 4월 11일 5년이 지난 후에야 김상진 열사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1988년 11월 20일 서울농대 교정에 김상진 추모비를 건립하면서 김상진기념사업회 창립
    1992년 4월 17일 『4월혁명상』수상
    1995년 4월 김상진평전 "긴 겨울 얼음 뚫고" (녹두)발간
    2001년 5월 1975년 김상진열사가 의거한 장소에 기념표석을 설치하였다.

     

     

     

    김상진 열사 양심선언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감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 당하기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후퇴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그러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꿇고 사느니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러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이고 내 양심이 지향하는 길이겠습니다.

    나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완전한 이성을 되찾아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갖다가 명실상부하게...)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없이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년 4월 11일 9시

    서울농대 축산학과 4학년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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