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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 - 보물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13. 04:07

    안성 죽림리 삼층석탑(安城 竹林里 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원래 죽산면 지역 폐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몇 개의 부재를 모아서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칠장사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전체 높이 363cm로 기단부는 단층이고 지대석은 상면에 호각형(弧角形)의 2단 괴임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3층을 이루고 있는데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1층 탑신석은 2매의 석재로 결구했는데, 문비(門扉)가 있는 부재는

    가까운 밭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온 것이고 다른 부재는 새롭게 보강한 것이다.

    문비는 감실형태로 세로로 선을 그어 문을 표현하고 좌우에 원형 고리를 조각했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치석 수법을 보이면서 체감되고 있으며,

    비례가 잘 어울려 같은 석탑에 활용되었던 부재였음을 알 수 있다.

    옥개석 층급은 모두 4단으로 동일 높이로 각지게 치석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오면서 가운데를 오목하게 하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도록 하였다.

    기단과 옥개석 낙수면 표현, 탑신부 체감 등을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 - 보물

     

    안성 칠장사 대웅전은 1790년(정조 14년) 중창되고 1828년(순조 28년) 이건된 건물로서,

    경기도권의 조선후기 사찰 중심 불전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전체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화려한 다포식 공포를 전후면에만 두고,

    구조는 짓고 관리하기 쉬운 2고주 5량의 맞배집으로 처리한 것은

    전반적으로 교세가 위축되어 있던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공포의 구성과 초각, 내부의 가구 구성과 불단의 조성, 소란반자와 연등천장,

    닫집을 함께 사용한 천장의 처리, 고주와 우주 등에서 두드러지는 자연목의 사용,

    사방의 벽면에 둔 창호의 배열 등도 모두 18-19세기 불전 건축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편, 고려전기 이래로 면면히 이어온 유래 깊은 사찰 건축의 전통에서 비롯한

    특수한 모습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전면의 석축과 계단, 초석 등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 높은 석공작의 기법도 엿볼 수 있다.

    천장 우물반자 청판에 일부 남아 있는 화초모양을 도드라지게 그린

    금색의 고분단청은 몇 안 남아 있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고분단청은 호분 등으로 여러 번 칠해 도드라지게 한 다음

    채색하는 것으로 입체감을 주는 채색법이다.
    대웅전에는 1685년 만들어진 목조석가삼존불좌상(경기도 유형 제213호)이 모셔져 있고,

    1628년 그려진 칠장사오불회괘불탱(국보 제296호),

    1710년에 그려진 칠장사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이 전한다.

    또한 칠장사 경내에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등

    고려시대의 불교 유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사찰의 역사를 전하는 사적기 및 현판 등도 다수 남아있다.

     

     

     

    목조석가삼존불좌상(木造釋迦三尊佛坐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작 연대가 분명하고 만든 스님의 이름까지 알 수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중형 나무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삼존불의 본존 부처는 앉은 자세에서 오른손을 곧게 펴서 무릎 아래로 내린

    이른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는 석가모니불 특유의 손갖춤(수인)을 하고 있어

    석가삼존불로 불려 왔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삼존불의 표면 금칠을 새로 하면서 왼쪽 협시보살에서

    ‘왼쪽 보좌 미륵보살(左補處彌勒菩薩)’이라고 쓴 발원문(發願文;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적은 글)이

    발견되어 이 삼존불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미륵보살이,

    오른쪽에 제화갈라보살이 보좌하는 수기 삼존불(授記三尊佛;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삼존불) 형식의 삼존불임을 알게 되었다.

    불상을 조각한 때는 1685년(숙종 11)이며, 만든 이는 조각승 마일(摩日)과

    천기(天機)스님을 비롯한 모두 8명의 조각승이다.

    특히 조각승 마일과 천기 스님은 17세기 중반에 전국을 무대로

    조각 활동을 했던 혜희(慧熙) 스님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다.
    본존 부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사각형의 얼굴과

    블록적인 신체 구성, 굴곡이 무시된 평면적인 신체 등에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안성 칠장사 범종(安城 七長寺 梵鐘) - 경기도 유형문화재

     

    총 높이 120cm, 구경 75cm의 크기로 조선후기 범종 중에서는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1782년(정조 6)에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종의 몸체는 위가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데

    중앙 부분부터 거의 직선으로 내려오는 형태이다.

    종의 정상부에는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쌍용의 용뉴(龍鈕)가 있다.

    종의 몸체에는 상 ·하대가 생략된 대신에 몸체 중앙에 둘러진

    굵은 줄을 기준으로 상하로 구분한 뒤

    상부엔 범자문(梵字圓文)과 연곽(蓮廓), 보살입상(菩薩立像)을 두었다.

    보살입상은 둥근 두광(頭光)에 합장한 자세로 연꽃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이 아래로 중간 띠와 하부 쪽에 둘러진 띠 사이의 여백 면에는

    크고 작은 긴 장방형 틀 안에 양각 명문을 새겼다.

    여기에 종을 제작한 장인(匠人)으로 신몽태(申夢泰), 이영태(李永泰),

    이영희(李永希), 이수성(李守成), 이영준(李永俊)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이영희는 18세기 중엽 이후 후반까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이만돌의 계보를 이은 장인이다.

    약간 길어진 듯한 외형과 종 몸체에 간략화 되면서도 도식화된

    세부 문양과 균형을 잃은 보살입상 등 이제 조선 후기 전성기에서 점차 쇠퇴하는

    범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명문을 통해 18세기 후반

    직업 장인들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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