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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탄 이신의 시비(石灘 李愼儀 詩碑)
    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1. 10. 9. 21:21

    석탄 이신의 시비(石灘 李愼儀 詩碑)

     

    사우가(四友歌) - 이신의(李愼儀)

     

    (소나무)

    바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위엄 있고 당당하여 반가운데

    바람과 서리를 겪어도 여위는 흔적이 전혀 없다

    어쩌다 봄빛(푸른 빛)을 가져 고칠 줄 모르나니

     

    (국화)

    동쪽 울타리에 심은 국화 귀한 줄을 누가 알겠는가

    봄빛을 마다하고 매서운 서리에 홀로 피니

    오호라 맑고 높은 내 벗이 다만 너인가 하노라

     

    (매화)

    꽃이 무한하되(무한히 많은 꽃 중에) 매화를 심은 뜻은

    눈 속에 꽃이 피어(눈과)한 빛인 줄 귀하도다

    더더욱 그윽한 향기를 아니 귀히 여기고 어이 하리

     

    (대나무)

    백설이 잦은 날에 대를 보려 창을 여니

    온갖 꽃 간데없고 대숲이 푸르렀구나

    어째서 맑은 바람을 반겨 흔들흔들하나니

     

     

    (해설)

     

    이 작품은 작가가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상소하였다가

    함경북도 회령에 유배되었을 때 창작한 연시조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보신을 위해

    자신의 지조를 꺾는 속된 선비들과는 달리

    시류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소나무(松), 국화(菊), 매화(梅), 대나무(竹)의 ‘사우’는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불변성을 지키는 대상으로,

    올곧은 선비들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는 식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사우’를 벗으로 인식하며 그들의 긍정적 속성과 그들에게 내재된 가치관을

    자신의 삶과 관련지으며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신의(李愼儀, 1551~1627)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칙(景則), 호는 석탄(石灘).

    부정(副正) 이익희(李益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간(李侃)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李元孫)이며, 어머니는 정종(定宗)의 현손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며 김장생(金長生)과도 친교가 있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1592년 임진왜란 때 향군(鄕軍) 300을 거느리고

    적과 싸워 공을 세우고 사옹원 직장(司饔院 直長)이 되었다.

    공조 좌랑 ·고부군수(古阜郡守)를 거쳐 1604년 임천군수(林川郡守),

    이어 남원부사(南原府使), 홍주(洪州) ·해주(海州)의 목사(牧使)를 지냈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하려는 데 대해

    항소(抗疏)를 올렸다가 회령(會寧)에 유배되고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1627년(인조 5) 형조참의 ·형조참판을 역임했다.

    같은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하여 강화로 가던 도중 수원에서 병사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문집에 ‘석탄문집(石灘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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