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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 초상들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1. 10. 18. 19:07

    복자 초상(福者 肖像)

     

    1971년 3월 12일, 김대건 신부님의 두개골을 계측하여 제작한 복자 초상화.

    정채석(비오)에 의해 수단(Soutane) 복장에 모관(毛冠, Biretum)을 쓴 형태로 제작되었다.

     

     

     

     

    6.25 한국전쟁 후에 그려진 초상

     

    1954년,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성화(聖畫)는 상본(像本)으로 제작되지 않았다.

     

     

     

     

    시복식(諡福式) 후의 초상

     

    1925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시복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우석(隅石) 장발(루도비코)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성화(聖畫)는 상본(像本)으로 만들어져 신자들에게 배포되었다.

     

     

     

     

    1925년에 제작된 초상

     

    1925년 초, 시복식을 앞두고 시복 대상자인 다른 프랑스 선교사들과 함께 펜화로 제작된 작품.

    프랑스인 플뢰레(Fleuret)에 의해 제작되었다.

     

     

     

     

    최초의 초상

     

    1920년 5월 14일, 용산신학교 교장이었던

    기낭(Guinand, 1872~1944) 신부의 은경축을 기념하여 제작된 작품.

    우석(隅石) 장발(루도비코)에 의해 한국 교회 사상 최초의 성화로 제작되었고 상본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소장처는 미상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초상

     

    김대건(金大建, 1821~1846)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본관은 김해(金海). 세례명은 안드레아. 초명은 재복(再福), 보명(譜名)은 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 출신.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다.

    증조부 김진후(金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金澤鉉)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1836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崔方濟)·최양업(崔良業)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巴里外邦傳敎會 東洋經理部)로 가게 되었다.

    그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Ferreol, J. J. J. B.)의 지시로,

    동북 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그동안에도 꾸준히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부제(副祭)가 되었다.

    그해 말에 서북국경선을 돌파하고,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하였다.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萬堂神學校)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같은 해 8월에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Daveluy, M. N. A.)와 서울에 돌아와서 활발한 전교할동을 폈다. 1846년 5월 서양 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가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뒤 문초를 통하여 국금(國禁)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및 천주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율(染邪之罪反國之律)을 적용,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선고하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首先鐸德: 첫 번째의 성직자라는 칭호)이라 불리는

    김대건의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여의 단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인 성직자의 자질과 사목능력을 입증하여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大主保)로 삼고 있다.

    1925년 로마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2019년 11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 기념인물로 확정했다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하였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色圖化)해서 정부에 제출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송산리) 솔뫼성지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이란?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와 일치하는

    전 세계 역사적 사건, 인물 또는 역사적 사건. 인물 또는 명사의 기념일을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정약용, 2013년 허준에 이어 3번째로 김대건 신부가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 선정

    * 중세 문학의 정수 ‘신곡’의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 이탈리아),

    ‘죄와 벌’ 등 세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 러시아)

    등과 함께 김대건 신부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 혜택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 유네스코 로고 공식 사용,

    유네스코 인사 초청 및 유네스코 본부(프랑스) 김대건 신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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