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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영수 여사 생가와 생전의 사진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9. 19:18

    옥천 육영수 생가(沃川 陸英修 生家)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이 가옥은 육영수 여사가 1925년 태어나

    1950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댁(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金) 정승, 송(宋) 정승, 민(閔)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지역 상류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종관(鐘寬)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큰집, 윗집, 사당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협문,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되어오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퇴락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 등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에 안채, 사랑채, 위채,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육영수 여사의 어린이를 위한 육영재단을 설립하였고 양지회(陽地會) 등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자선봉사활동을 하였으며

    대통령의 훌륭한 내조자이자 한국의 어머니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

     

     

     

     

    약혼식 사진(1950. 9. 15)

     

     

     

    결혼식 사진(1950. 12. 12)

     

     

     

    육영수 여사께서 세종로 가로에 꽃을 심기 위해 김현욱 시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1966. 10. 17)

     

     

     

    육영수 여사께서 영하의 날씨에도 철원지역 군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위문했다.(1966. 12. 17)

     

     

     

    육영수 여사께서 전남지구 건설단을 방문,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1968. 8. 11)

     

     

     

    꽃밭조성

     

     

     

    충남 청소년회관 개관

     

     

     

    농촌생활개선 촉진대회(진료부)

     

     

     

    제32회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 석권

    (1973년 4월 10일, 유고 사라예보 여자 단체전 :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충청북도 여성회관 건립식

     

     

     

    어린이회관 기공식

     

     

     

    우량아 선발대회

     

     

     

    가족사진(청와대)

     

     

     

    어린이 청와대 초청

     

     

     

    난(蘭) 치시는 육영수 여사님

     

     

     

    대한적십자사 수요봉사회

     

     

     

    군부대 시찰

     

     

     

    군부대 시찰

     

     

     

    군부대 시찰

     

     

     

    어머님 이경령 여사님 환갑잔치

     

     

     

    식목일 행사 참석

     

     

     

    속리산 관광도로변 초가집 방문

     

     

     

    속리산 관광도로 확. 포장공사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 1952년 7월 2일 밤, 박정희 -

    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
    길이 빛나고 아름다워라.
    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
    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의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서
    인생 코스가 되어 주오.
    그대 편안히 잠자는 모습을 보고
    이 밤이 다 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당신이 그리우면

     

    1974930, 박정희 -

     

    당신이 이곳에 와서 고이 잠든 지41일째

    어머니도 불편하신 몸을 무릅쓰고

    같이 오셨는데.

    어찌 왔느냐 하는 말 한마디 없오

    잘 있었냐는 인사 한마디 없오

    아니야

    당신도 무척 반가워서 인사를 했겠지

    다만, 우리가 당신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내 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애

    당신도 잘 있었오

    홀로 얼마나 외로웠겠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당신이 옆에

    있다 믿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그리우면

    언제나 또 찾아 오겠오

    고이 잠드오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올 테니

    그럼, 안녕.

     

     

     

     

    님이 고이 잠든 곳에

     

    – 1975년 8월 14일 박 정 희 -

    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소리 우지진데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
    제철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번 가면 못 오는고
    님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 백일홍도 제철 찾아 또 왔는데
    님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세월은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니
    인생도 오고 가네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

     

     

     

     

    육영수 사랑법


    육영수는 동서남북 못 가는 데가 없었다.

    옆에 따라붙어야 할 사람들이 그리 필요치 않았다.

    비서관 한 사람만을 데리고 어느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을 찾아가거나,

    홍수로 사납게 부풀어 오른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 고립된 수해지역에 나타나

    그곳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육영수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사랑의 열매’를 뭇사람의 옷깃에 달아줄 때도

    중학생부터 회사원, 노인들은 물론 지게꾼까지도 한 푼의 사랑에 동참하러 몰려드는 바람에

    광화문 지하도가 꽉 막혀도 육영수에게는 경호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를 가려해도 대통령 부인이 온다면 부산스레 영접 준비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적십자사 봉사원들 틈에 섞여 들어가 재봉틀을 돌리거나

    전방의 병사들에게 보내는 위문품을 포장하며 늘 밝게 웃곤 했다.

     

     

     

     

    육영수 사랑법에는 구애가 없다.

     

    그 자신은 불교신자이면서 딸이 천주교 영세를 받을 때

    천주교 예복 차림으로 의식에 동참할 만큼

    세속의 편협된 종교관 따위에도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연말은 누구에게나 분주하게 마련이지만,

    대통령 부인 육영수도 더욱 예외는 아니었다.

    눈이 펄펄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예고하는 12월 24일,

    용산역 장병 휴게소에 모여 있던 휴가병들이 갑자기 환성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었다.

    대통령 부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앞치마를 두르고 장병들에게 손수 라면을 끓여주고 서빙을 해주는 도우미로 온 것이었다.

    군용 열차 편으로 도착한 병사들이 “충성!”

    거수경례를 붙이고 스스럼없이 “어머니”를 호칭하며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얼마 후 병사들이 라면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대통령 부인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육군 참모총장이 부랴부랴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 병사들이 모처럼 몸을 녹이고 있는데 총장님 보고 도로 얼겠어요.”

    대통령 부인이 눈을 흘기면서 이렇게 말하자,

    참모총장은 웃음을 못 참아 병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일시에 휴게소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1970년 크리스마스 전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용산역에 나갔던 육영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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