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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 사적 제109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9. 04:11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 사적 제109호

     

    사적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맹씨 행단은 조선 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집안이

    살던 곳으로 지역 안에는 고택과 세덕사, 구괴정,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 집이다.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을 둔

    홑 처마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민가(古民家)이다.

    세덕사(世德祠)에는 고려말 두문동(杜門洞) 72현인

    맹유(孟裕). 맹희도(孟希道). 맹사성의 위패가 있다.

    구괴정(九槐亭)에는 세종 때 황희(黃喜). 맹사성. 권진(權軫) 등

    3 정승이 9그루의 느티나무(槐木)를 심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2그루만이 남아 있다.

    맹씨 행단은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6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행단(杏壇)'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행단’은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고 공부하던 자리를 말하기도 한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 (중리)

     

     

     

     

    안내문

     

    문화재명 앞에는 그 지명을 넣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아산 맹씨 행단"의 표기에서

    "아산"은 지명이고 "맹씨 행단"은 문화재명입니다.

    예를 들면 "아산 현충사", "예산 충의사" 등등...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산"을 맹씨 관향으로 잘못 알고 "아산 맹씨"로 오해를 하는데,

    맹씨는 단본이고 관향은 "신창"으로 "신창 맹씨" 이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신창 맹씨 대종회 회장

     

     

     

     

    보호수(회화나무)

     

    지정번호 : 8-16-3-318, 지정일자 : 1982. 11. 10.

    수고 : 24m, 나무둘레 : 120cm, 수령 : 약 320년

     

     

     

     

    아산시 배방읍 행당길 25 孟建植(맹건식)

     

     

     

    쌍행수(雙杏樹) - 충청남도 보호수

     

    아산 맹사성 고택 앞마당에는 1982년 11월 1일에 충청남도 도 나무로 지정된

    쌍행수(雙杏樹, 고유번호 8-91)로 6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쌍행수 한 그루는 높이 40m, 둘레 5m 80cm, 다른 한 그루는 높이 45m, 둘레 8m 50cm로,

    사적 109호로 지정된 아산 맹씨행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이 심은 것으로

    당시 맹사성은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는데,

    뜻있는 사람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이곳을 행단(杏壇)이라 칭하였다 한다.

    한편 이 나무는 2~300여 년 전부터 싹이 원목 옆 사방으로 자라

    지금과 같은 거목으로 자라게 된 것이며,

    1987년 원목의 구멍 안이 부패하여 외과 수술을 받았다.

     

     

     

     

    사적 제109호 맹씨 행단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맹씨 고택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2월 무민공(武愍公) 최영(崔瑩, 1316~1388)의

    부친인 최원직(崔元直, ?~1333)이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실제로 최영이 살았던 집이다.

    1388년(우왕 14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따른 정란(政亂)으로 최영이 죽은 뒤,

    비어 있던 집에 맹사성(孟思誠, 최영의 손녀 사위)의 아버지 맹희도(孟希道, ?~?)가

    정란을 피하여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은거(隱居)하였다.

    1482년(성종 13년), 1642년(인조 20년), 1814년(순조 14년),

    그리고 1929년에 각각 건물을 손질하여 고친 기록이 있으며,

    고택 가구부(古宅 架構部)에 남아 있는 고부재(古部材)와 창호(窓戶) 등이

    견실한 고법을 간직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 맞배지붕으로 건평은 90.72㎡(27.5평)이다.

     

     

     

     

    세덕사(世德祠)

     

    세덕사는 두문동(杜門洞) 72현인 맹유(孟裕, 1315~1389)와 맹희도(孟希道, 1337~1423),

    조선조의 정승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맹유는 고려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하였고,

    맹희도는 벼슬을 버리고 한민(閒民)으로서 충절을 지켰다.

    맹사성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淸白吏)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政丞)으로 유명하다.

     

     

     

     

    구괴정(九槐亭)


    이 정각(亭閣)은 조선 세종 때의 정승이었던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이

    황희(黃喜, 1363~1452), 권진(權軫, 1357~1435)과 함께

    느티나무를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었다는 데에서 구괴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600여 년 전의 이곳은 오봉산(五峰山)을 배경으로 앞에는

    북풍을 막아주는 배방산과 복부성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금곡천(金谷川)의 맑은 물이 당긴 활(弓) 모양으로 흘러내려

    시인과 묵객(墨客)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였다.

    세 정승은 이곳에 정각을 세워 시문(詩文)을 지어 읊으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겼고,

    국정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일하는 농민을 불러 위로하며 민정도 살폈다.

    60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홉 그루 중 일곱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고,

    두 그루만이 허리를 굽힌 채 받침대에 의지하여 흥 만성 쇠(興亡盛衰) 하였던

    500년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한편 이곳은 삼정승이 국사를 논의하였다고 하여 삼상당(三相堂)이라고도 한다.

    구괴정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6칸 규모의 정자이다.
    바닥은 모두 마루를 깔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호나 벽체가 없이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부는 팔작지붕 구조이다.

    1994년 발간된 『맹씨 행단 성역화사업 종합정비 기본계획

    (孟氏杏壇 聖域化事業 綜合整備 基本計劃)』에는

    ´지금은 터만 남고 정자는 훼손된 지 오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당시 정자터의 모습만이 사진으로 남아 있어 최근에 복원된 정자임을 알 수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243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1360~1438), 자는 자명(自明), 호 고불(古佛), 시호 문정(文貞),

     

    고려 말 맹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충(忠)과 효(孝)라는

    유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가학(家學)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권근(權近, 1352~1409)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젊은 나이에 문과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 검열을 시작으로 대사헌, 의정부 찬성사, 삼군도진무,

    예문관 대제학, 우의정을 거쳐 죄의정에 올랐다.

     

    시문(詩文)이나 음률(音律)에도 밝아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명나라와 왜(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탁월한 도덕성과 지혜로운 처신으로 왕의 신임을 얻었고,

    세종 대에는 8년간 재상으로 활동하여 청렴한 관료로 명재상이라는 칭송을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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