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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0. 20:10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곳

     

     

     

    명륜당(明倫堂)

     

     

     

    내삼문(內三門)

     

     

     

    홍도당(弘道堂)

     

     

     

    대성전(大成殿)

     

     

     

    서무(西廡)

     

     

     

    동무(東廡)

     

     

     

    명륜당의 온돌 장치, 아궁이와 굴뚝

     

    옥천향교 명륜당의 특징은 공중에 떠 있는 아궁이다

    2층 양쪽 교관의 방구들을 데우는 온돌 장치로 열이 아궁이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고

    그 열이 가능한 한 구들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굴뚝은 작은 구멍을 내어 처리하였으며 아궁이 주변은 허공인 것이 인상적이다.

    아궁이의 불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궁이 면은 낮게 하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 부분은 높게 설치하여

    앞에서 뒤로 갈수록 오르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고직사(庫直舍)

     

    고직사는 옥천향교의 관리사로, 최근 지붕 누수, 처마 처짐 및 서까래가 부식되어,

    옥천군은 2021년 6월부터 고직사 지붕(165㎡)을 해체 후 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항의신편(抗義新編)이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헌의 글과 생애에 대한 일화를 안방준(安邦俊)이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의 앞장에는 화가 이징(李澄)이 그린 조헌의 일생 중 주요 장면 8점의 판화가 남아있다.

     

    궁경양친도(躬耕養親圖) : 젊은 시절 농사로 부모를 공양함.

    빈례사노도(賓禮師奴圖) : 스승의 편지를 가지고 온 노비를 예로 대접함.

    지부복궐도(持斧伏闕圖) : 도끼 상소를 올림.

    도보과령도(徒步過嶺圖) : 길주로 유배를 가며 마천령을 넘는 광경

    청참왜사도(請斬倭使圖) :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주장하며 도끼 상소를 올림.

    청주파적도(淸州破賊圖) : 청주에서 왜군을 물리침.

    금산사절도(錦山死節圖) : 금산에서 순절함.

    칠백의총도(七百義塚圖) :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 700여 명을 모아 무덤을 만듦.

     

     

     

    조헌(趙憲)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유학자이자 경세 사상가, 의병장이다. 조선국 공조좌랑 등을 지냈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시호는 문렬(文烈). 본관은 백천(白川). 성혼의 문인이다.

    조헌(1544~1592) 선생은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 옥천군 안읍 밤티(현재 안내면)에서 강학과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에게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고 직언(直言)을 했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일본에서 온 사신이 “명나라를 치러 갈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자

    지부상소(持斧上疏 :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림)를 올려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 선생은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영규대사의 승병과 합세하여 왜군에게 빼앗겼던 청주성을 되찾고,

    이후 700여 명의 남은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군과 맞섰지만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들의 무덤이 현재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七百義塜)이고, 조헌 선생의 무덤은 옥천에 안장하였다.

     

     

     

    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하여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와 서재가 있다.

    중간에 내삼문(內三門)을 두었고, 그 뒤편에는 문묘(文廟)인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廡), 서무(西廡)가 있어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사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다.

    명륜당은 세종 22년(1440)에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여러 차례 수리하여 오다,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부속건물로 기숙사인 홍도당(弘道堂)과 관리인이 거처하는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8길 8 (교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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