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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 육영수 생가 -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3. 19:11

    사랑채

     

    정면 3칸의 사랑 대청과 정면 2칸의 온돌방으로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온돌방의 후면으로 전화방과 암실, 창고 등의 부속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귀빈접대 등에 사용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방문 시 임시 집무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연당 사랑

     

    연못의 후면에 배치되어 연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정면 3칸의 규모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되어 있고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로 되어 있으며,

    교동 가옥 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로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전한다.

    연못에는 희귀한 수종의 나무와 연꽃이 있었다고 하며,

    겨울에는 가족들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문채

     

    동네사랑으로 20여 명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규모의 방이었으며,

    이 가옥에서 일하던 사람들 및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기도 하였고,

    겨울철에는 새끼도 꼬기도 하던 온돌방이다.

     

     

     

     

    석빙고(石氷庫)

     

    여름에 음식을 보관하기 위하여 땅속을 광처럼 파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덮어 씌웠던 것으로 일종의 냉장 시설이다.

    입구는 반원 형태로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이다.

     

     

     

     

    육영수 여사의 방

     

    이곳은 육영수 여사가 출가하기 전까지 사용하였던 방으로

    책상 하나 놓여 있고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다고 하며,

    후면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연자방아

     

    소나 말을 이용하여 곡물의 껍데기를 제거하여 밀을 빻기도 하였던 전통적인 농기구로써

    화상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윗돌(숫돌)과 둥글고 판판한 받침돌(암돌)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 구형의 방아틀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아틀에 연결된 윗돌을 마소가 끌어 굴림으로써 방아를 찧게 되어 있다.

     

     

     

     

    뒤주

     

    곡식을 담아두기 위한 대형 뒤주로서,

    보통의 뒤주가 통나무나 널빤지를 짜서 궤짝의 형태로 만드는데 비해

    이 뒤주는 너비 1m 50cm, 높이 2m 40cm로 바닥에서 들어 올려진

    고상식(高床式)으로 판벽과 판문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안채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 출가하기 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령 여사가, 골방에는 육영수 여사가,

    동쪽 날개채 안사랑은 육종관 씨가 주로 거주하였다고 한다.

    안방의 서쪽에 부엌이 있으며, 부엌의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누락이 있다.
    안채는 "ㄷ" 자형의 구조로 몸채는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며,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몸채와 날개채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전형적인 공간 구성 양식 중의 하나이다.

     

     

     

     

    위채

     

    전형적인 "ㅁ" 자형의 구조로 서쪽은 안채에서 통행할 수 있는 진입로이며,

    동쪽에서 외부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교동 가옥의 가장 후면에 있으며, 공간 구성은 안채와 거의 유사하여

    정면 2칸의 안대청이 있고,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안방의 서쪽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의 상부에는 누다락이 구성되어 안방에서 사용하였으며,

    함실 부엌과 연속되는 날개채에는 행랑과 식모방이 있다.

     

     

     

     

    차고(車庫)

     

    육영수 여사의 부친 육종관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있어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에 이미 외국산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래채의 대문간채에 부속되어 있으며 골함석의 우진각 지붕으로 마감하였다.

    당시 4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의 생애

     

     

     

    옥천 육영수 생가(沃川 陸英修 生家) -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이 가옥은 육영수 여사가 1925년 태어나

    1950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 댁(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金) 정승, 송(宋) 정승, 민(閔)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 지역 상류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종관(鐘寬)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큰집, 윗집, 사당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협문, 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되어오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퇴락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 등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에 안채, 사랑채, 위채,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육영수 여사의 어린이를 위한 육영재단을 설립하였고 양지회(陽地會) 등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자선봉사활동을 하였으며

    대통령의 훌륭한 내조자이자 한국의 어머니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 (교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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