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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史蹟) 호로고루(瓠蘆古壘)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5. 20:10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이 40m, 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재미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물의 양이 대략 15,996㎥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만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이어 벌어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신라가 점령하여 사용하였다.

    신라군이 점령할 당시 호로고루 동벽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성벽 곳곳이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라군은 고구려 성벽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으로 보수하였는데,

    고구려 성벽은 신라 성벽에 가려져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포대가 설치되면서 성벽의 윗부분과 남쪽 부분이 크게 훼손되었고

    고구려 유적으로 알려지기 이전 마을 주민이 뱀을 잡기 위해 중장비로

    남쪽 치의 상부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고구려 성벽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게 되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후대의 인위적인 원인으로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로고루 동벽은 한 곳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다.

     

     

     

    호로고루 동벽 남쪽 치(雉)

     

    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앞으로 내여 쌓은 구조를 말하는데,

    호로고루 동벽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치가 있다.

    남쪽 치는 성벽의 상부가 훼손되면서 내부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 성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치의 제일 안쪽 가장 높은 성벽은 고구려의 체성벽으로

    바깥쪽에 기대어 쌓은 보축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고구려 보축성벽에서 바깥쪽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편마암으로 쌓은 성벽이 보이는데

    이는 후대의 신라가 쌓은 성벽이다.

    이 성벽 앞으로 네모나게 바깥쪽으로 내어 쌓은 성벽이 있다. 이것이 동벽의 남쪽 치다.

    치는 다시 현무암의 기초를 가진 반원형의 성벽으로 다시 둘러져 있는데,

    치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성벽은 95% 이상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은데 반해

    신라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편마암이 사용되었다.

    현무암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오랫동안 임진강 일대를 지배하며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한 고구려의 석공들에 비해

    새롭게 임진강 지역을 차지한 신라의 석공들은 그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가 없어서

    다루는데 익숙한 편마암을 멀리서 가져와 성벽을 쌓는 수고를 했다고 한다.

     

     

     

    임진강(臨津江)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유입되는 강으로

    길이 254㎞, 유역면적 8118㎢이다

    강원도 북서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평안천(平安川)이 모여

    경기도 연천군으로 흘러들어 한탄강(漢灘江)·문산천(汶山川)과 합쳐

    고랑포(高浪浦)를 지나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 황해(서해)로 유입된다.

    하천이 합류되는 유역 일대에 비교적 비옥한 평야가 발달하였다.

    임진강 중상류지역은 경기도 북동부 지역으로, 황해도·강원도 등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지장봉(地藏峰, 877m)·보개산(寶蓋山, 724m) 등의

    험준한 산이 자리잡고 있다.

    하류지역은 한강유역과 함께 넓은 경기평야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군사·교통상의 요충지로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접경을 이루어 분쟁이 잦았던 지역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으며,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유역에 있는 연천군 전곡읍(全谷邑) 전곡리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굴되어,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였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강의 중·상류지역은 6·25 때의 격전지로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문인폭(文人瀑)·연취암(蓮醉巖)·보개산·용추(龍湫)·문인석 등 명승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호로고루 동벽 계단

     

    호로고루 동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계단이다.

     

     

     

    집수시설(集水施設)

     

    이 유구(遺構)는 고구려 시대 집수시설로 2011년도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이 집수시설의 동쪽 끝에는 우물이 접해 있다.

    집수시설의 크기는 동서 길이 786cm, 남북 길이 720cm, 깊이 3m 정도다.

    집수시설은 바닥에 통나무를 다듬은 각재를 네 면에 깔고,

    그 위에 현무암을 다듬은 석재를 쌓아서 벽체를 조성하였다.

    또한 특이하게 바닥에는 여러 겹의 통나무들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부엽층이 1m 정도 덮여 있었다.

    집수시설에서는 고구려 토기편, 경질 기와 편, 적갈색 기와 편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집수시설은 용도를 변경하여 계속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통일바라기 망향단(望鄕壇)

     
     

     

    호로고루

     

    호로고루 이 절벽에 성을 쌓고

    천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나라 잃은 설움 안고

    황포 배들이 머문 포구

    당에서 말갈에서

    기병들이 몰려오는데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

    네가 들을까

    머물 곳 없는 슬픔이 현무암을 쌓고

    스스로 문을 닫으니

    백만 대군이 와도 열 수 없으리

    임진강이 마르고

    좌상바위가 평지가 된다 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으니

    그대여 어서 돌아와

    회군의 나팔을 불어주게

    호로고루 호로고루

    연천벌을 지나서 고구려까지

    푸른 바람이 부는구나

     

    - 시인 전윤호 作 <봄날의 서재 中>

     

     

     

    호로고루 통일바라기 공원

     

    연천군 장남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과 육군 제25보병사단 제72연대, LH공사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인 호로고루 성 주변에 통일의 염원을 담은

    해바라기를 식재하여 ‘호로고루 통일바라기 공원’을 조성했다.

    과거에는 고구려 군사적 요충지였고, 지금은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이 된 긴장의 땅

    호로고루 성 일대를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희망의 땅으로 바꾸기 위하여

    ‘호로고루 통일바라기 공원’으로 명칭을 정하고, 장남면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마을 주민, 인근 군부대와 LH공사가 뜻을 모아 자발적으로 조성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통일 바라기"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통일 바라기 축제"는 매년 8월 15일 광복절을 전후로 개최된다.

     

     

     

    연천 호로고루홍보관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

     

     

     

    사적(史蹟) 호로고루(瓠蘆古壘)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北岸)의 현무암 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성이다.

    호로고루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120여 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 개의 고구려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그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상에 있을 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남쪽 국경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 유구,,

    대규모 석축 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 와당, 치미, 호자(虎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화려한 기와건물과 상당히 높은 신분의 지휘관이

    호로고루에 상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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