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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4. 20:15

    북에서 온 광개토대왕릉비

     

    이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소재한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제공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민간의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을 주도하며 이 비를 소장하고 있던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015년 연천군에 이 비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연천군은 고구려의 기상을 되새기고 남과 북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남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구려유적인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에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영토를 많이 넓힌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현재 중국 지린성 퉁거우 지역)에

    광개토대왕의 능과 함께 비를 세웠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불규칙한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각력 응회암의 4면에

    44행 1,775자의 비문을 새긴 비로 높이는 6.39㎝이고 너비와 폭은 1.35~2m이다.
    비문의 내용은 앞머리에 건국시조인 주몽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 왕들의 계보와 업적이 적혀있고,

    본문은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경계지역을 돌아본 일들이 적혀 있으며,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 광개토대왕(394~412, 고구려 제19대 왕)

    고구려 전성기의 서막을 알린 한민족 최고의 정복 군주이다.

    담덕이라는 이름으로도 제법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기준으로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추모의 13세손이다.

    광개토왕릉비에는 17세손으로 기록되었는데 아마 직계가 아닌 왕계를 기준으로 한 것 같다.

    18세에 보위에 올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할아버지대에 멸망 직전까지 갔던 고구려를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만든 군주로,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먼치킨(munchkin)이자,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를 '대중'들이 자주 붙여 부르는 유이(唯二)한 군주이기도 하다.

    또한 고구려 최초로 '태왕'의 칭호를 사용한 임금이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163번길 128 (원당리) 연천 호로고루홍보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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