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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최씨(慶州崔氏) - 대전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2. 4. 04:07

    경주최씨 문중 유래(慶州崔氏 門中 由來)

     

    경주최씨는 최씨의 대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의 전신으로 경주에 자리 잡은 사로국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공(蘇伐都利公)이시다.

    신라를 세운 원훈(元勳)으로 법흥왕 3년에 충선공(忠宣公)으로 시호(諡號) 받았고

    태종 무열왕 3년에 문열왕(文烈王)으로 추봉(追封)되셨으며

    유리왕 9년에 최씨(崔氏)로 사성 받았다. 이것이 성을 갖게 된 유래이다.
    경주최씨의 시조는 소벌도리공의 24세손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최씨의 분파는 고운 선생을 1세로 하는 경주최씨에 그 연원(淵源)을 두고 있다.
    고운 선생은 12세의 어린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합격하시고

    그 후 여러 관직에 있으면서 많은 글을 지었는데,

    이 가운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은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귀국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문란한 국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시무책 10여조의 개혁안을 제시하여 아찬(阿飡)에 올랐다.

    그 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고

    소요자방(逍遙自放)하시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치셨다.

    고운 선생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지성이요, 한문학의 조종이며

    절세의 명문으로 명성을 천하에 떨친 분이시다.

    문집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과 그밖에 많은 명저를 남기셨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어 문창후(文昌侯)에 추봉 되셨다.

    경주최씨는 시조 이래로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사상 숱한 명현, 학자, 관인, 장상을 배출하여

    도덕문장(道德文章)과 절의훈벌(節義勳閥)이 찬연한 명문거족이 되셨다.

    경주최씨는 명가의 후예(後裔)로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오늘날에도 국가와 사회에 헌신 봉사하면서 조상의 빛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유래문 지은이 : 문학박사 崔槿黙(최근묵)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364 뿌리공원 內

     
     

     

    작품명 : 번영(繁榮)

     

    조각가 : 현광덕(玄光德)

    작품 설명 : 최(崔)자를 형상화하여 만든 것으로 산(山) 자 모양으로 타오르는 성화이며 번창함을 상징한다.

    우측의 뾰족한 5점은 새추()자의 윗점과 우측 4획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수많은 후손들의 힘을 하나의 큰○으로 모아 번영과 화합과 단결을 나타내고 있다

     

     

     

    贈山僧(증산승) 入山詩

    어느 중에게

    僧乎莫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 저 중아, 산이 좋다 말하지 말게

    山好何事更出山(산호하사갱출산)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나.

    試看他日吾蹤迹(시간타일오종적) 저 뒷날 내 자취 두고 보게나

    一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갱부환) 한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

     

     

     

    團團石中物(단단석중물) 석함 속에 든 것은
    半碧半黃金(반백반황금) 희기도 하고 황금 같기도 하다.
    夜夜知時鳥(야야지시조) 밤마다 때를 알리는 새인데
    含情未吐音(함정미토음) 정을 품고 아직 소리를 내지 못하는도다.

     

    당나라 황제가 밀봉 석함으로 보내며 내용물을 알아보네라는데 대하여

    고운 선생께서 위와 같이 시구로 답하였다.

     

    始祖 孤雲 先生 詩(시조 고운 선생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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