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사적, 강화 초지진(史蹟, 江華 草芝鎭)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9. 22:15

    초지진 소나무 - 보호수

     

     

     

    포탄 흔적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및 운양호 사건(1875년)의 격전장으로

    노송과 성벽에 각종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어 그때의 치열했던 전황을 말해주고 있다.

     

     

     

    대포(大砲) - 초지진 홍이포(草芝鎭 紅夷砲)

     

    구경 : 100mm, 길이 : 215cm, 중량 : 1,800kg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 장전식화포(砲口 裝塡式火砲)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조선 영조 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강화 초지대교(江華 草芝大橋)

     

    제2강화대교라고 불리는 강화 초지대교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를 잇는 84번 지방도의 해상 교량이다.

    1999년 6월에 착공하여 2002년 8월 29일 준공, 개통했다.

    교량 길이 1.2km, 폭 17.6m의 왕복 4차로에 인도 겸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다리 아래로 선박이 통행하기 위해 다리 가운데가 끝보다 높은 형태이다.

     

     

     

    2021년 7월 1일부터 전적지 무료화 운영 실시

    대상시설 : 갑곶돈대(전쟁박물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초지진 소나무

     

    초지진의 소나무 수령은 약 400년 정도 되었다.

    나무는 굵은 줄기가 위로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은 모양으로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모양으로 처져 아름다운 수형을 가지고 있으며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수려한 모양의 희귀 노거수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크며 역사 문화적 가치 또한 크다.

    이 나무들은 1656년(효종 7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초지진을 설치할 때

    초지진에 선비의 기상과 지조를 상징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강화 초지진(史蹟, 江華 草芝鎭)

     

    초지진은 조선 후기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요새 중에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수비 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 : 군대가 주둔하는 곳)들이 강화도 일대로 옮겨 왔다.

    초지진도 경기도 안산에 있던 수군기지를 효종 7년(1656)에 이곳으로 옮겨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강화 지역은 1870년대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한 열강들과 격렬히 싸웠던 곳이다.

    특히 초지진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전력의 열세로

    미군에게 점령을 당하면서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괴되었고,

    고종 12년(1875) 운요호 사건 때에는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고종 13년(1876)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강화도조약)가 체결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는 주권 상실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초지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져 성벽의 기초만 남았다.

    이후 1970년대에 복원하고 이곳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대포를 전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초지진 옆 소나무에는 1870년대 전투 중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