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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보성사터, 수송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1. 31. 21:05

    세움 말

     

    대한민국 종교계와 문화관광부는 3.1 운동 80주년을 맞아

    "대한독립만세"의 외침 속에 하나가 되었던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

    국가 발전과 국민 화합을 다지기 위해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하였던 이곳 옛 보성사 터에 이 기념물을 세운다.

     

    1999년 3월 1일

    기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 문화관광부

     

     
     
    기미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독립선언서)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 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ㅡ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今(금)에 十年(십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 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 소잔)을 興奮伸張(흥분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 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하면, 最大急務(최대 급무)가

    民族的(민족 적)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통성)과 時代良心(시대 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 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아)世宗世業(세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犖(탁락)한

    民族心理(민족 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 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縻(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상태)를

    改善匡正(개선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한 正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 한 兩國倂合(양국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

    할 수 없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 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 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 所以(소이)가 안일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수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 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여금 正當(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여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하는 不安(불안),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세계평화), 人類幸福(인류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일시)의 勢(세)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玆(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群象(만휘 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백세) 祖靈(조령)이 吾等(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公約三章(공약삼장)

    ㅡ.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ㅡ.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ㅡ.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1919년 3월 1일


    朝鮮民族代表(조선민족대표)

    손병희(孫秉熙)·길선주(吉善宙)·이필주(李弼柱)·백용성(白龍城)·김완규(金完圭)·김병조(金秉祚)·

    김창준(金昌俊)·권동진(權東鎭)·권병덕(權秉悳)·나용환(羅龍煥)·나인협(羅仁協)·양전백(梁甸伯)·

    양한묵(梁漢黙)·유여대(劉如大)·이갑성(李甲成)·이명룡(李明龍)·이승훈(李昇薰)·이종훈(李鍾勳)·

    이종일(李鍾一)·임예환(林禮煥)·박준승(朴準承)·박희도(朴熙道)·박동완(朴東完)·신홍식(申洪植)·

    신석구(申錫九)·오세창(吳世昌)·오화영(吳華英)·정춘수(鄭春洙)·최성모(崔聖模)·최린(崔麟)·

    한용운(韓龍雲)·홍병기(洪秉箕)·홍기조(洪基兆)

     
     
     
     

    私立普成學校(사립보성학교) 普成社(보성사)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터(大韓每日新報 創刊 社屋址)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영국인 베델(Bethell)과 양기탁(梁起鐸, 1871~1938)이 창간한

    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 항일 민족 언론이다.

    이후 중동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신흥대학 터(新興大學址)

     

    신흥대학은 일제강점기 시절 서간도(西間島, 압록강 북쪽 지역)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으로 1949년 3월 20일 정식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개교한 자리이다

    그 후 신흥대학은 1955년 회기동(동대문구)으로 이전하여

    1960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로 이름으로 바꾸었다.

     
     
     
     

    숙명여학교(淑明女學校) 옛터

     

    수송공원은 '용동궁'이 있었던 터이다

    조선조 명종의 장남 순회세자가 책봉을 받았으나 14세에 세상을 떠나 세자빈의 속국이 되었고

    조선말 경운궁(현 덕수궁) 부근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가 독일인 묄렌도르프에 하사 되었고

    그 뒤 엄비의 소유로 변하여 숙명여학교가 설립되었던 곳이다

     

    주소 : 漢城府 中署 壽進坊 磚洞 十一統 六戶

    (한성부 중서 수진방 전동 11통 6호)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80번지

    개교 : 1906년 5월 22일

    이전 : 1980년 2월 25일

    이전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91번지

    숙명여자중고등힉교장 정충량

     

    서울 종로구 수송동 80-7 보성사 터(수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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