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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산서원(梅山書院) - 여주시 향토유적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1. 21:13

    보호수(향나무)

     

    지정번호 : 여주 - 18

    수령 : 160년(1982. 10. 15 지정일 기준)

    수고 : 7m, 가슴높이 나무둘레 : 70cm

     
     
     
     

    通訓大夫司憲府監察 南平文公諱致昌 配淑人咸陽尹氏 壇碑

    (통훈대부사헌부감찰 남평문공휘치창 배숙인함양윤씨 단비)

     
     
     
     

    戶曹佐郎 南平文公諱承孫 配宜人密陽朴氏 壇碑

    (호조좌랑 남평문공휘승손 배의인밀양박씨 단비)

     
     
     
     

    文公泳達功績碑(문공영달공적비)

     
     
     
     

    文炳學功績碑(문병학공적비)

     
     
     
     

    매산서원(梅山書院) - 여주시 향토유적

     

    문익점은 1363년(공민왕 12) 고려 조정이 원나라에 보낸 사신단의 서장관(書狀官)으로 가서

    목면(木棉)을 만드는데 필요한 목화(木花) 씨앗을 구해왔다.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고향에서 목화 재배에 성공하여 후일 의류 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고려에서 전의주부(典儀主簿),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역임하였고,

    조선 태종 때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강성군(江城君)에 추봉 되었다.

    1456년(세조 2) 양성지(梁誠之, 1415~1482)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1329~1398)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사우(祠宇)를 세울 것을 상소하여

    그의 출생지인 강성현(江城縣, 현 경상남도 산청군)에 사우가 창건되었다.

    문익점의 사당이 여주에 세워진 것은 현손(玄孫) 문치창(文致昌)이 1461년(세조 7) 여주에 은거한 뒤

    별묘(別廟)를 세우고 ‘삼우사(三憂祠)’라고 현액(懸額)하면서부터이다.

    삼우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다가 1711년(숙종 37)에 중수하였다.

    1862년(철종 13) 다시 후손들이 재물을 모아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 한국전쟁으로 다시 훼손되어 여주 지역의 후손들과

    여주시의 지원을 받아 현재 건물을 재건하였다.

    이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을 함께 배향하면서 ‘매산서원’이라 현액 하였으며,

    1986년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여주 유림에서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 강당이 있으며

    강당 뒤 내삼문 안에는 문익점과 이색을 봉안한 사당에 ‘매산사(梅山祠)’란 현판이 걸려있다.

    강당에 매산서원 현판과 서원 봉건기(奉建記), 여러 기문(記文) 등이 있어

    매산서원의 연혁을 상고할 수 있다.

    사당의 마당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향나무가 드리워져 있어 서원의 기품을 더해주고 있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능서로 94-8 (번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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