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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조씨(楊州趙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3. 4. 04:10

    양주조씨(楊州趙氏)의 유래

     

    양주조씨의 근원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인데 선계(先系)는 실전되어 상고할 길이 없다.

    시조(始祖)로 모시는 조잠(趙岑)은 고려(高麗)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를 증직받은 판원사공(判院事公)인데 조지말(趙之末)의 후손으로,

    군우(君佑)의 손자 경질(景質)의 아들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양주조씨는 판원사공 1세조 잠과, 2세조 호판공 인필(仁弼), 3세조 서운관정공(書雲觀正公) 의(誼)로

    3대에 이르기까지는 독신으로 선계(先系)가 이어 왔으나

    서운관정공 조의(趙誼)는 고려조 충신(高麗朝 忠臣)으로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맏이가 정평공(靖平公) 조계생(趙啓生)이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강화공(江華公) 조유중(趙惟中)이 강화부사 불가(佛家)로 귀의한 조설우대사(趙雪牛大師),

    문강공(文剛公) 조말생(趙末生)이 영중추원사 예문관 대제학,

    제학공(提學公) 조종생(趙從生)이 병조참판 제학을 지냈는데

    5형제의 아들 중 문강공 말생(末生)의 후손이 가장 많이 번성하여

    양주조씨(楊州趙氏) 중 다수의 후손 인구를 이루고 있다.

    정평공(靖平公)은 아들 병조판서 극관(克寬), 평안도관찰사 수량(遂良),

    제학공(提學公)은 아들 병기녹사 번(藩)과 손자 계동(季同), 향동(香同), 귀동(貴同) 등이

    조선(朝鮮) 단종조(端宗朝)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목숨을 잃어 후손의 인구가 적다.

    양주조씨(楊州趙氏)는 조선조(朝鮮朝)에서 문과급제 97인, 무과 급제 71인,

    생원진사 244인, 상신(相臣) 8인, 대제학 5인, 인조 장렬왕후(仁祖 莊烈王后)를 배출하고,

    국구 1인, 의빈 2인, 청백리 1인, 충절 13인, 효열 32인, 재상급 26인을 비롯하여

    천여 명의 관료가 나온 조선시대를 통하여 명문벌족(名門閥族)으로 이름을 얻은 가문(家門)으로,

    특히 1905년 대한제국(大韓帝國) 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반대 상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순국(殉國)한 원임의정대신 충정공(忠正公) 조병세(趙秉世) 선생은

    양주조문(楊州趙門)의 명예를 선양한 인물(人物)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안영동) 중구 효문화마을관리원 뿌리공원 內

     
     
     
     

    충정공 산재 조병세 선생(忠正公 山齋 趙秉世 先生)

     

    충신(忠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議政府 左議政),

    대한제국(大韓帝國) 의정대신(議政大臣) 충정공 산재 조병세 선생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현(稚顯)이고, 호를 산재(山齋)라 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 의정대신(首相, 수상)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경기도 가평 향리(鄕里)에 은거 중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고

    고종황제(高宗皇帝) 배알(拜謁)을 청하고 상소(上疏) 하였으나 비답이 없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고종황제께 을사역신(乙巳逆臣) 처단상소(處斷上疏),

    국민에게 고하는 호소문(呼訴文),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遺書)를 남기고

    1905년 12월 1일 자결(自決) 순국(殉國)하시어

    광복 후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大韓民國建國功勞勳章) 중장(重章)이 추서(追敍)되었다.

     
     
     
     

    작품명 : 충효단(忠孝壇)

     

    조각가 : 이영섭(李英燮)

    작품 설명 : 이 충효단은 양주 조문(楊州 趙門)이 배출한 충절(忠節)과 효자(孝子)를 표현한 상징물이다.

    국력(國力)이 약했던 근대 한국 대한제국(大韓帝國)이 1905년 일본국(日本國)에 의하여

    강압적인 방법으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대한제국 원임의정 대신(原任議政 大臣)

    충정공(忠正公) 조병세(趙秉世) 선생이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선생 등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고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반대하며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형하고 조약(條約)을 파기토록

    고종 황제(高宗 皇帝)께 상소하였으나 비답(批答)이 없고 일본군 헌병(日本軍 憲兵)에게 저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황제(皇帝)께 상소하고

    국민과 주한 각국 공사에게 호소문을 남기고 순국(殉國)한 선열(先烈)의 뜻을

    국민(國民)들이 알아야 할 한국(韓國)의 근대사(近代史)를 작품에 담은 것이다.

     
     
     
     

    소망(所望) - 일광 조원환(日光 趙源煥)

     

    부모(父母)에 고마워 하고

    형제자매(兄弟姉妹)가 귀(貴)한 줄 알며

    처자식(妻子息)을 보호(保護)하는

    이런 가족(家族)이 되게 하소서.

     

    선영(先塋)을 살피고

    조상(祖上)이 못다 한

    씨족(氏族)의 종사 문화(宗史 文化)를 계발(啓發)하며

    가문(家門)을 빛내고

    힘을 주는 이런 후손(後孫)이 되게 하소서.

     

    이웃을 위(爲)하고

    사회(社會)를 위(爲)하며

    국가(國家)를 위(爲)하는

    이런 인물(人物)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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