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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경궁 명정전 일원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4. 21:10

    보물, 창경궁 명정문(昌慶宮 明政門)

     

    명정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인데, 잘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중앙열의 주열(柱列)에는 각 칸마다 2매씩의 육중한 판문을 달아 안으로 열리게 하였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경궁 명정문과 좌. 우 행각. 명정문과 행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로도 쓰였다고 한다. 

    창경궁 행각들은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바꾸면서 허물었던 것을 1980년대에 복원하였다.

     

     

     

     

    국보, 창경궁 명정전(昌慶宮 明政殿)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 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이는 애초에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지은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이다.
    앞쪽에 펼쳐진 마당, 즉 조정(朝廷)에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갖추었다.

    정전 마당 양옆에 늘어선 돌들은 품계석이라 하는데, 행사 때 문무백관들이 품계석에 새겨진

    각자의 품계에 맞춰 국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선다.

    또한 삼도 가운데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었다.
    명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 있는 경사진 돌을 답도라 하는데 그 위로 국왕이 탄 가마가 지나갔다.
    명정전 건물 내부에는 국왕이 앉았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봉병’이라는 병풍이 있다.

    해와 달은 국왕과 왕비 또는 양과 음을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의 산은 전국의 오악 또는

    오행을 상징하여, 국왕과 왕비가 전국토를 잘 다스림을 뜻한다고 한다.

     

     
     
     

    명정전 앞 조정 마당. 명전문에서 삼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양쪽에 각각 12개의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마당에는 박석을 깔고 사방에 행각이 둘러져 있어,

    조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는 공간이다.

     

     

     

     

    품계석은 조정 관료들이 행사 때 품계에 따라 도열할 수 있도록 세운 것으로

    원래는 동.서에 각각 12개씩 세워진다.

    창경궁은 동향을 하기 때문에 남. 북으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관직의 품계는 9품까지 있는데,

    품계석은 1~3품까지는 정(正)과 종(從)을 구분하여 6개씩,

    나머지는 정,종을 구분하지 않고 6개씩 세워져 모두 24개가 설치되어 있다.

     

     

     

     

    답도 소맷돌에는 두 마리의 봉황이 새겨져 있다.

     
     
     
     

    명전전은 궁궐 정전으로 공식적인 행사가 거행될 때 국왕이 앉은 닫집 형태의 어좌가 마련되어 있다.

    뒤쪽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닫집 형태의 어좌가 있고,

    그 뒤로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이 놓였다.

    천장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 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천장 한가운데는 두 마리의 봉황이 새겨진 보개천장으로 장식하고 있다.

     
     
     
     

    드므

     

    명정전 앞 양 옆에는 ‘드므’라 불리는 큰 청동그릇이 있다.

    드므에는 물(방화수)을 가득 담아두어 화재예방의 의미가 있지만,

    화마(火魔)가 불을 지르러 왔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정전 양쪽 1칸씩은 창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꽃창살로 장식하여 소박하면서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장식적인 효과가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기둥 사이에 2개의 공포를 추가하고 있다.

    공포는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정전은 경복궁과 달리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뒤편의 편전과 내전과 같은 높이를 하고 있으며, 복도각을 통하여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창경궁이 이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명정전 뒤편 복도각. 편전인 문정전과 침전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보 명정전

     

     

     

     

    명정전 일원(明政殿 一圓)


    1616년에 재건된 명정전(국보)은 창경궁의 중심 전각으로,

    각 궁궐에 남아 있는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단층의 단아한 규모지만 2단으로 쌓은 월대(月臺 :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 위에 세워

    정전의 권위를 갖추었다.

    앞쪽에 펼쳐진 조정(朝庭) 마당에는 넓적한 박석을 깔고

    중앙에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御道)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갖추었다.

    뒤쪽은 다른 건물로 연결되는 복도를 달아 통행의 편리함을 추구했다.

    명정문과 행각(보물 )이 조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齋室)로도 쓰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185 (와룡동) 창경궁 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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