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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18. 20:13
영춘헌은 본채 5칸이 남향하여 ㅡ자형을 이루고
본채의 좌우와 뒷면으로는 행각이 둘러져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으며
서쪽으로 ㅁ자형의 행각이 이어져 맞붙어 있다.
놋상 및 주전자 – 유기장 보유자 이형근 작
만자문 촛대 – 유기장 보유자 이형근 작
주칠 원형 소반 – 칠장 박강용, 소목 이건무 작
백자 그릇 – 공예작가 김윤지
누비 방석 – 공예작가 정숙희 작
아트디렉터 – 김주일
복자발 – 염장 보유자 조대용 작
나주반 – 소반장 보유자 김춘식
함 – 칠장 이수자 권영진 작
화문석 – 공예작가 박윤환 작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이 일대는 생활공간이 밀집된 영역이었다. 집복헌은 후궁의 생활공간이었다.
현재 집복헌은 마치 영춘헌의 서쪽 행각처럼 붙어 있으나 원래는 두 집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834년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처럼 바뀐 것으로 보인다.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와 정조 14년(1790) 6월에 순조가 집복헌에서 탄생했다.
정조는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재위 24년(1800) 6월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이 건물의 동쪽에 궁녀들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빈터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內
내전터 일원(內殿址 一圓)
앞에 보이는 숲 일대는 궁궐 여성들의 처소로 가득했던 생활구역이었다.
요화당(瑤華堂)과 취요헌(翠瑤軒)은 효종이 공주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으며,
통화전(通和殿)은 혼전으로 이용되었다.
그 사이 사이에 궁녀들의 작은 처소들이 많았고, 어린 왕자들과 관련된 건물들도 섞여 있었으나,
1830년에 일어난 화재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일대 모든 내전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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