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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의 길 15처 - 명동대성당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2. 6. 3. 20:05

    십자가의 길(The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본시오 빌라도(Pontius Pilate) 총독 관저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Golgotha)에 이르기까지의 14가지 중요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십자가의 길 기도의 형태와 의미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고정한 이후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오늘날까지 가장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기도로 자리 잡아 왔다.

    이 14처는 ① 사형선고 받으심 ② 십자가를 지심 ③ 첫 번째 넘어지심 ④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심

    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⑥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⑦두 번째 넘어지심 ⑧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⑨ 세 번째 넘어지심

    ⑩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⑪ 십자가에 못 박히심

    ⑫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심 ⑬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⑭ 무덤에 묻히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 부활을 포함시켜

    십자가의 길 기도를 15처로 바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자체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점에서

    15처를 포함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고,

    반면에 예수님이 묻히신 그 무덤이 또한 부활하신 장소이기에

    14처로도 충분히 예수님의 부활까지 묵상할 수 있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14처로 바쳐야 하느냐, 15처로 바쳐야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느냐 하는 것이다.

     
     
     
     

    명례방 초기 천주교 집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조각 : 임송자 리따)

     

     

     

     

    프란치스코 교황 (조각 : 이용덕 루가)

     

     

     

     

    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다.

    이곳에 처음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 명례방 종교집회였다.

    이후 1892년 코스트 신부가 성당 설계에 착수하였으며, 1898년 5월 29일,

    한국 교회의 주보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하여 대성당을 축성 봉헌하였다.

    1900년대부터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모시게 되었고,

    현재까지 지하 성당에 모셔져 있다.

    1942년에는 최초의 한국인 주임신부가 부임하였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의 서품식도 거행되었다.

    1945년에는 광복을 맞아 성당의 이름을 '종현대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명동대성당은 1970년대~1980년대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사회의 인권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벽돌조 성당,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성전이기에

    그 건물 양식으로도 하나의 교회사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이고, 성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6.7m이며,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사적, 명동대성당(명동주교좌 성지성당)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다.

    이 자리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현 중구 소공동) 인근이기도 하다.

    1898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본당 설립 이후 줄곧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

    고딕 구조에 가까운 본격적인 서양식 성당으로 프랑스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다.

    토지 매입은 188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른 정부와의 갈등,

    청일전쟁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5년 만에 완공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1892년 착공했는데,

    신자들이 무보수로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당 한편에 자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성당보다 앞서 1890년 ‘주교관’으로 신축된 건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하나이다.

    주교관 및 경리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2018년 6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고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부터 오늘의 서울대교구가 있기까지의 변천사를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74 (명동) 명동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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