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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백악, ‘백악춘효(白岳春曉)’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29. 04:09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백악, ‘백악춘효(白岳春曉)’
빼앗긴 궁궐의 봄
20세기 초 서화계의 거장이었던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1915년 여름에 그린
〈백악춘효(白岳春 曉)〉는 백악과 경복궁 일대의 모습을 담은 대표적인 그림이다.
‘백악의 봄날 새벽’이라는 제목처럼 버드나무와 같이 푸른 잎의 나무가 궁내에 무성하고
경복궁 전각의 처마와 용마루 사이로 새벽안개가 낮게 깔려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자연이 주는 활기와 다르게 인적 없는 경복궁과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모습은 고요와 적막이 가득하다.
화면 상단에 마치 거대한 기념비처럼 우뚝 솟아 있는 백악은 조선왕조의 도읍, 한양의 주산(主山)으로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화면 중앙의 광화문은 엄밀한 투시도법을 적용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안중식은 전통적인 형식의 산수화를 즐겨 그렸지만 이 땅의 실경을 새롭게 그리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1915년, 그해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는 그림 속 풍경과 사뭇 달랐다.
조선 왕실의 중심 무대였던 경복궁은 경술국치 이후 원형이 크게 파괴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안에 청사를 세우기 위해 계획적으로 경복궁의 행각과 다리 등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일강제병합 이후 5년의 식민통치를 선전하는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하기 위해
1915년 3월부터 9월까지 4,000 여 칸에 이르는 전각을 헐어내 서양식 임시 진열관으로 궁궐 내부를 메웠다.
공진회가 개막하자 건물에 매달린 화려한 장식 전구의 불빛 아래 열린 각종 공연과 볼거리가 연일 이어졌다.
공진회 기간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에는 관중 100만 명이 모여들었다.
안중식이 그린 인적 없는 거리와 수풀이 우거진 궁궐은 사실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하고 거리에는 밤낮으로 구경꾼이 북적이던 공간이었다.
조선의 봄날을 향한 염원
안중식은 20세 때 영선사(領選使) 일행으로 선발되어 중국 톈진기기창(天津機器廠)에서 1년 동안 기계제도법을 배우고 돌아온 뒤 우정총국에서 일하기도 했던 개화 지식인이었다.
이후 장승업(張承業)과 교유하고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적인 동향을 습득한 그는 고종의 초상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화가로서 명성을 높이며 왕실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오세창과 함께 계몽운동에도 동참해 여러 인쇄 매체에 근대적 감각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던 안중식은 경술국치 이후에도 이왕직이 후원하던 최초의 근대적 미술 교육 기관인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전통 서화의 근대적 계승에 기여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갔던 개화 지식인이자 서화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해 가는데 조선 왕실은 그에게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런 그에게 식민지 박람회장으로 변모해 버린 궁궐의 모습은 받아 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악의 봄날 새벽’이라는 제목은 상징적이다. 예로부터 많은 문인이 노래했듯 봄은 짧게 지나가 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 저명한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춘효(春曉)〉에서 어느 봄날 잠에서 깨어 간밤 비바람 소리에 꽃이 다 떨어진 것을 보면서 봄이 지나가는 안타까움을 노래했다.
망국의 현실 속에 무너져 가는 궁궐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그 지위와 위상을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던 안중식에게 백악의 봄날 새벽이란 어쩌면 지나간 왕조의 영화로운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자 다시 올 조선의 봄날을 향한 염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안중식의 염원은 광복을 맞고서야 이루어졌지만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는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지난봄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백악의 남쪽 등산로가 54년 만에 다시 열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 권력의 주변에서 금단의 땅이 되어 온 백악은 이제 국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경복궁도 제 모습을 계속 찾아가고 있고 광화문 광장도 새롭게 다시 만날 예정이다.
백악의 봄날 새벽은 이제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발행 :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글. 김승익(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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