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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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5. 1. 22:08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전탑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이 탑은 8세기경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있던 탑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법흥사는 18세기 초반 이후 문을 닫았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487년에 탑을 고쳐 지었고 본래 있던 상륜부(相輪部)의 금동 장식을 없앴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탑을 보수하면서 기단의 윗면에 시멘트를 발라 원래의 모습이 훼손되었다. 7층이나 되고 높이 17m, 기단 너비가 7.8m인 거대한 탑이지만 매우 안정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팔부중(八部衆)과 사천왕(四天王) 등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신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일반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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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명정전 일원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4. 21:10
보물, 창경궁 명정문(昌慶宮 明政門) 명정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인데, 잘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중앙열의 주열(柱列)에는 각 칸마다 2매씩의 육중한 판문을 달아 안으로 열리게 하였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경궁 명정문과 좌. 우 행각. 명정문과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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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 19:15
국보,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경회루는 침전 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 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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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27. 21:11
보물,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景福宮 勤政門 및 行閣)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근정문(勤政門)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형태가 날카롭고 곡선을 크게 그리고 있어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행각(行閣)은 근정전의 둘레를 직사각형으로 둘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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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및 삼층석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12. 21:05
수덕사 대웅전 및 삼층석탑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수덕사 경내 국보 -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백제시대 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충렬왕 34년)에 건립되었다. 따라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이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더 오래된 건물임이 밝혀졌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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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보령 성주사지(史蹟, 保寧 聖住寺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10. 19:19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성주사지 석등(聖住寺址 石燈)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석등이다. 지붕돌(屋蓋石, 옥개석)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火舍石)과 받침 기둥(竿石, 간석)이 가늘게 만들어졌으며, 팔각형 지붕돌 위의 상륜부가 파손되었다. 높이는 220cm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며, 파괴되었던 것을 근래 수습하였다. 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세운 5층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옥개석(屋蓋石), 탑신석(塔身石)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 사리공(舍利空)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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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7. 21:10
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에 머무르면서 선문 구산(禪門九山) 중 성주 산문을 일으킨 무염대사(無染大師, 801~888)를 기리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에 따라 지은 비석으로, 10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5,120여 자의 긴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최인연(崔仁渷)이 해서체로 쓴 것이다. 내용은 무염대사의 성장과 출가, 중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귀국하여 성주사를 일으키고 불법을 전하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종사(禪宗史)와 당시의 신분제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포오석(藍浦烏石)이 재료인 이 비석은 1천여 년의 풍상(風霜)을 견디며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남포오석의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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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전신첩(惠園傳神帖) 중 주사거배(酒肆擧盃) - 국보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 20:14
혜원 전신첩(惠園傳神帖) 중 주사거배(酒肆擧盃) - 국보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28.2cm×35.6cm, 작가 : 신윤복(申潤福, 1758~?) 간송미술관 주사거배(酒肆擧盃) - 혜원(蕙園) 술판이 벌어지고, 잔을 들어올리다 잠깐 주막에 들러 술 한 잔을 하고 갈 길을 재촉하는 일행,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술값을 치르려는 모습, 끝까지 안주를 집으며 술잔을 좀처럼 놓지 않는 일행, 술 한 국자를 더 떠주는 주모, 이들을 무심코 바라보는 사내 등 한 잔 술에 불이 붙은 일행과 이를 말리려는 일행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담 너머 주막 안 풍경이 은밀하게 바라다보이고, 담 아래 핀 철쭉이 봄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배치와 악센트처럼 강조된 선명한 채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